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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애이련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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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산 새해맞이

경인(庚寅) 논단



차라리 애이련다 (2)


  상사는 경우와 조리에 맞게 움직이며, 우리는 그것을 상식으로 인정하고 수긍한다. 그렇게 익숙해진 틀 속에서 사회질서에 순응하며, 그 안에서 번연(繁衍)한 삶을 이루려고 무던히 애를 쓰면서 살고 있다. 어느 때는 날카롭게 경계의 날을 세우고 사물을 냉정하게 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정(情)붙은 온화한 본연의 모습을 갖는다. 그러나 삶이 주지적(主知的)이던 주정적(主情的)이던 그 하나하나의 치열한 순간마다 유의적(有意的)인 자세를 견지함을 잊지 않으며, 모두가 수긍하는 보편적 삶을 영위하려고 성실을 다한다. 그것은 사유(思惟)의 행태와 그에 따라 얻어진 이해에 따른 행동반경까지도 보편적인 삶의 범주 안에 있게 됨을 이르며, 대다수가 공감하고 긍정하는 관습화 된 도덕적 관념을 상식의 기준으로 갖게 되었음을 말한다. - 그러므로 수천 년의 세월을 갈고 다진 내 방식에 따른 숭조 원시보본(崇祖 原始報本;조상을 극진히 받든다)사상이나 숭조의식(崇祖儀式)은 우리에게는 경우이며, 상식이 된다. - 그런 가운데에 보편적인 관습의 범위를 다소 벗어나는 실상(實狀)을 대하거나 이목에 덜 익숙한 모습을 보게 되면 보통은 그것을 이상(異常)이라고 말하고, 더욱 심한 상황까지 목도(目睹)하게 되면 황당한 나머지 눈과 귀마저 의심하게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수없이 겪는 일 가운데에는 상식에 어긋나고 이치에도 맞지 않음으로써 반상(反常)을 만드는 경우가 있으며, 이에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음에도, 그로인한 대비가 아이러니(irony)하게도 삶의 진실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곧잘 변증법적 논리에 의해 해석됨으로서 사필귀정의 경각심을 주기도 하여 오묘한 하늘의 이치를 경험하게 한다.
  그러나 인간사회의 집단화된 의식에서는 사회정의마저 모순으로 뒤덮여도 관념화되면 그것조차 진실인양 착각하여 꼼짝달싹 못하고 갇히게 된다.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에게 사로잡힌(전 7:26)'꼴과 같아 교조주의(敎條主義)의 -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 올가미가 씌워진 관념의 노예로 전락한다. 이에는 비행위(vikarma)는 물론이고 행위(karma)라도 의도적이 되면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결국은 흑을 백으로 알고, 백을 흑으로 보아도 그것이 바른 것인 줄로 인식하게 되는 자기최면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뿌리마저 내다버려도 옳고 그름을 모르는 것처럼 심한 경우의 왜곡에는 문제가 있다. 그것을 신앙심이라 해도 틀리지 않으며,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고 하는 절대명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라 해도 같다. 하늘이 하나이듯이 오로지 한 가지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주장하는 하나뿐인 하늘 또한 어떠한 하늘이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집단화된 관념적인 의식에 갇힌 도식적인 믿음을 내세우며 극복해야 한다고 설득하려고 한다거나 보이는 문자 그대로 믿게 하려는 것 등은 가장 경계하여야할 그야말로 오활(迂闊)한 주장이다. 그것은 맹목(盲目)을 강요하는 뻔뻔함에 불구하며, 경(經)이란 과학과 역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이들 분야는 문자적인 정확성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애써 멀리하려는 속악(俗惡)한 행위이다. 따라서 비(非)진리인줄 알면서도 참(眞)진리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리에 대한 파렴치한 행위이며, 어리석다고 조롱당하는 거짓 진리이며 맹신(盲信)을 강권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코 우리가 추구하는 완성으로 가는 삶과는 거리가 먼 것일 뿐만 아니라, 인식의 오류가 낳은 전도된 가치관이 고질적인 사회적 병폐로 고착화되어 그것을 절대진리로 인식하게 된 결과로 편견의 안개로 흐려진 지혜의 빛은 앞을 밝힐 수 없게 한다. 이는 배달민족의 도덕적 기준을 부정하는 패역(悖逆=인륜에 어긋나고 불순함)한 일탈이며, 대다수의 인류가 겪었던 쓰라린 역사이자 참담했던 암흑기였던 중세의 유럽과 같은 신의 세계를 동경하는 것뿐이지, 인간스러운, 인간의지에 의한, 인간중심인 세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찌하여 인간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을 규범의 틀 안에다 완강하게 가뒀던 그 시대를 쫓아가려하는가.

  혼사(婚事)를 치르고 고유(告由)하는 것이나 명절이나 기일(忌日)에 제사를 올리는 정성이 아무리 달라진 세월의 인심이라 해도 우상숭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자신의 뿌리가 뽑히는 어리석은 짓인 줄도 모르고, 교리와 맞지 않는다는 당찮은 이유로 가벼이 여기며 조상대대로 반만년을 이어온 전통을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짓밟기까지 하는 망나니짓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더욱 기막힌 것은 한민족이 다른 민족이 될 수 없음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건만, 값도 모르고 싸다는 속담이라도 증명하듯 포교에 장애가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들먹이며 민족의 근원인 개천(開川)의 고귀한 의미까지 훼손시켰다. 개천이란 뜻 그대로 하늘이 열린 것이다. 민족의 국조(國祖)인 단군이 어둠 속에서 갈 길마저 잃고 헤매던 참담한 시절에 배달민족을 양(陽)의 세상으로 이끌어 밝은 빛을 보게 한 것을 이른다. 그 역사가 올해로 단군기년(檀君紀年) 4343년이다. 개천의 해였던 BC 2333년은 노아(Noah, BC 3058∼BC 2108)가 홍수로 곤욕을 치를 때와 비슷한 시기이다. 우리의 역사가 그만큼 오래고 깊다. 그러나 유대종족은 후대에 만든 문서에 몇 자의 글로 기록되어 있을 뿐으로 그 시대를 증거 해주는 한 조각의 유물조차도 구경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인들은 자신의 역사에 대하여 성경을 앞세우며, 성조시대(족장시대,Patriarchal Age)부터 진정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족장들의 사실성(史實性)에 대해서는 양식 비평가인 헤르만 궁켈이 분류했듯이 '족장들에 대한 이야기는 영웅담이나 전설에 속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에는 게르하르드 폰 라드(Gerhard von Rad)나 마틴 노트((Martin Noth))같은 20세기의 많은 학자들도 동조하고 있다. 성경의 다른 중요한 인물들의 경우가 그렇듯이, 성경이 아닌 곳에서는 족장들에 대한 분명한 언급을 찾을 수 없다. 이는 그때까지도 유대민족의 대표종교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지 못했음으로 그 시대 전체를 대변할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하지만, 수없이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창세기 기자가 성경에 기록해 놓은 족보이외에는 입증할 수 있는 어떠한 물증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 결정적인 결함이다.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사실관계에서도 '다윗과 솔로몬 왕조(BC 10세기)'의 번영이나 그 내용이 역사적인 실체로 실증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가나안 정착 설화(BC 13∼BC 11세기; 창 15:16, 19-21 등 참조)'는 더한 의문투성이이다. 이는 이집트에서 이주한 유대인이 토착세력을 대체한 게 아니고 같은 히브리종족간의 분쟁이었으며, 기득권층과 신흥세력간의 충돌로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가나안종족은 노아의 손자 가나안(창 9:22)보다 수천 년이나 앞선 BC 7000년경의 신석기시대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토착민이었다. 역사시대 전체를 통하여 BC 20세기부터 약 200여년은 가나안문명이 - 얇게 만든 최고수준의 파이안스(faience)와 알라바스터(alabaster)토기문화 - 최고로 발달한 시기를 갖기도 하였던 문화민족이었다. 그러나 셈족이 BC 19세기부터 대거 이주하면서 충돌이 빈번해졌으며, 힉소스족이 이집트왕조를 무너트릴 만큼 세력이 커진 이후부터는 지역의 주도권을 완전히 잃었다. 그들은 모세가 태어나기 몇 백 년 전에 이미 소수민족으로 전락하여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후대의 어느 시기에 역사가나 기자가 성경에 기록하였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역사적 사실(事實)이 뒤바뀌거나 없었던 것이 실재한 것처럼 사실화(史實化) 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종교라는 하나의 틀 안에서, 신학적인 관점에서는 대단한 가치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떠나서는 하나의 신화나 전설 속의 일일뿐으로 역사적으로는 가치를 매길 수가 없다. 오늘날까지의 발굴조사결과, 팔레스타인 지역의 고대 히브리역사의 대부분은 전거(典據)가 없는 전승된 이야기수준이며, 고고학자들이 지난 수십 년 간에 걸쳐 이룩한 역사적인 성과물(?)들을 이스라엘인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절대가치인 신화(창세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며, 이는 역사의 진실조차도 멀리하려는 것이다.

  하늘이 행하는 바를 그 누가 이유를 명확히 알아내겠는가? 신(神)은 '오로지 인간에 의해 완성된 주관적 교리를 말씀으로 하여 선(善)마저 유별(有別)하게 다스리고 있지만', 하늘(天)은 우리가 아는 한에서,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도 빠뜨리지 않는다.(天網恢恢, 疏而不失)는 이치로 만유(萬有)에 공평하게 적용되는 섭리로 다스린다.' 그러므로 하늘의 순리(天道)로 이루어지는 역사는 유대종족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의 신이 오늘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어느 날 갑자기 인간 세상에 하강한 것이 아니라면, - 물론 처음부터 영원토록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 출 3:14)'인 창조주이니 인간의 인지에 관계없다. 그러나 1부의 註13에서 논 한대로 다른 민족의 창조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 여느 단일신과 마찬가지로 다신론의 세계에서 인간에 의해 유일신화(唯一神化)된 것이며, - 유대종족이 다신론적 신앙체계에서 유일 신앙을 갖게 된 전환점은 명확하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바빌론 유수기로 본다. 모세가 율법으로 하나이기를 바랐지만 수백 년 간 다툼만이 있었을 뿐,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유일신을 믿기 시작한 것은 BC 586년 나라가 멸망하고부터이다. 이는 못난 민족이 하던 것처럼 망국의 설움 속에서 얻은 뼈아픈 교훈의 산물이다. - 오늘날과 같은 위상을 갖게 된 배경에도 모세를 비롯한 수없이 많은 인간의 힘이 숨어있다. 종교의 발전은 진화로 인한 지력(智力)의 향상과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가인(Cain, @yIq')족속의 후손에 의해 이룩된 경망한 문명(창 4:20-22)이라고 터부시하는 그것의 발전이 비옥한 토양이 되었으며, 비례하여 커졌다.
  고대유대민족의 조상이었던 북방계셈어족은 - 당시의 대표적인 남방계셈어족은 BC 1940년에 신수메르왕조를 무너트린 아모리족(Amorite族)이다. 이들은 메소포타미아지역이 혼란스럽던 BC 23세기경부터 팔레스타인지역으로 이주하였으며, 가나안족을 비롯한 그 지역 원주민들은 이들 유목민들을 서쪽에서 온 이주민인 아무르 사람들(People of Amurru)이라고 불렀다. 성경에서는 아무르 인들을 아모리족(Amorites)으로 부른다.(창 15:18, 출 23:31, 신 1:7, 11:24, 수 1:4) - 북부시리아에서 터키의 아나톨리아(Anatolia)반도 동남부에 위치한 하란(Harran)과 이란 서부의 우라르트(Urartu)지역에 이르는 드넓은 초지(草地)에 뿔뿔이 흩어져 씨족을 단위로 하는 소규모 집단으로 생활했으며, 낮은 수준의 사회체계와 토속신앙의 성격을 벗지 못한 원시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에 대하여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당위성을 찾으려는 시도의 하나로 노아의 대홍수이후에 '가나안의 저주'와 빼놓을 수 없는 인과관계에 놓이게 함으로써 가능해졌으며, 거의 천년에 이르는 시간을 아우르며, 오유(烏有)의 시대는 그렇게 창세기 기자에 의해 사실(史實)인양 완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민족은 그 시기 이전부터 전거(典據)가 뚜렷이 증거하고 있는 완전한 역사적 실체였다. 어찌 유령처럼 떠돌던 유대종족의 없는 역사와 우리를 견줄 수가 있는가? 그러함에도 누구하나 나서서 막으려는 용기는 고사하고, 분명코 이해를 떠나 깊이 통찰해야하거늘, 못 볼 것을 보게 되는 것처럼 고개를 돌리거나 심지어는 부화뇌동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제사의식을 사대주의에서 뿌리내린 인습(因襲) 쯤으로 가벼이 여기고, 편벽(偏僻)과 이기(利己)로 순풍양속(淳風良俗)의 전통을 뒤엎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중화문명은 중화권의 중심인 독립문명이다. 우리는 그 주위의 많은 문명 중에 하나인 주변문명이다. 이 부분은 역사적 고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옛 조선족이었던 예맥족(濊貊族)이 꽃핀 찬란한 홍산문화(紅山文化, 약 7,000∼8,000년 전의 신석기후기문화)와 그 후에 초기청동기문화인 하가점문화(夏家店文化)를 어떻게 규명하느냐에 달렸다. 근래에 들어와 중국이 탐원공정(探源工程)의 일환으로 백두산을 비롯한 만주지역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물론 역사란 출토된 유물이 모든 것을 말하지만 - 이미 5천 년 전부터 우리 민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은 그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이 사실(史實)의 전거(典據)로서 증명하고 있다. - 우려되는 일은 의고(疑古)라는 해괴한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의도를 어떻게 좌절시키느냐이다. 의고(疑古)란 '역사적 사실을 대함에 있어, 고대자료를 검토해서 의심이 가면, 다시 말해 자신들의 의도나 생각과 다르게 나타난다면 이를 부정한다는 뜻이다.' 중국이 1996년 5월, '초월의고, 주출미망(超越疑古 走出迷茫)'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전례가 없는 '역사바로세우기'란 미명하에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을 공식으로 선언할 때부터 적용되어왔던 역사해석이다. 세계 사학계로부터 비난이 쏟아져도 요지부동으로 막무가내다. 그런데도 그들을 몰아세우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의 역내에서 일어난 고대사를 통해서 민족혼을 바로 세우려는 그들을 무어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남들은 다 그렇게 민족의 정기를 다지고 다진다.
  중국 현대고고학계의 거두였던 소병기(蘇秉琦, AD 1909∼1997)가 내몽골 적봉(赤峰)지역의 홍산문화(紅山文化)의 발견에 즈음하여, '홍산문화는 중화문명의 서광이다. 이 문화는 이미 씨족사회단계를 뛰어넘어 국가형성의 초기단계에 이르렀다, 홍산문화는 중국 문명사를 1000년이나 앞당겼다.'고 흥분하였지만, - 홍산문화는 지금까지 출토된 유물의 고고학적인 고증만 가지고도 중원문화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 수준도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동이문화(東夷文化)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는 아쉬움만 남을 뿐으로 거기까지이다. 우리가 자신들의 것을 태만히 하는 한은 결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찌되었던 중화문명은 선진문명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중요한 것은 물 흐르듯이 흘러온 중화문명을 받아들인 후에 문화의 종속이냐, 아니면 내 것으로 소화했느냐이다. 당연히 우리는 독특한 한민족만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는 중국은 물론이고, 같은 주변국이며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도 완연히 다른 한민족만의 고유한 문화로 꽃을 피웠다. 결코 사대주의 문화가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떤가? 사대주의를 말하는 한 입에서 미풍양속을 타파해야할 못된 것으로 강요하면서도 오히려 자신들은 유대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하늘같이 받들라고 말한다. 거기에다 일부에서는 한술 더 떠 조상인 단군까지도 우상으로 취급하며 박대한다. 이는 자신의 뿌리이기도 한 민족의 정체성을 깡그리 내다버리고, 다른 곳에서 바른 자기를 구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나 다름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요, 기가 막힌 위선이며, 결국은 자아(自我)까지도 부정하는 꼴이 아니겠는가. 이를 어찌 이해해야 할까?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어느 누구는 변명이라고 말하는 것인지, 조상에 대한 은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대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라고 얼토당토 않는 이유를 댄다. 그렇다면 똑같이 하늘에 제사를 올린 가인과 아벨을 신이 무엇 때문에 선택하여 받았을까? 우리 조상이라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물론 고유한 전통이라고 해서 무조건 따라야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전통이라도 시대의 흐름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록 대부분의 제도가 관습까지도 순기능(順機能)을 염두에 두고 제도화된 것이지만, 세월이 지나다보면 오히려 역기능(逆機能)이 되어 편리보다는 불편을 초래할 때가 있다. 따라서 예전에 해오던 대로 그대로 따라하고 바꾸지 않는 것은 고루한 생각이며, 더구나 요즘같이 우주시대라고 불리는 첨단의 시대에는 꽉 막힌 답답한 노릇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조금은 불편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옛것을 버리는 것은 조상의 손때가 묻어나는 귀중한 우리의 얼마저 버리는 옳지 않은 행동이다. 더구나 자기 것을 가다듬어 시대에 맞추어 키울 생각은 저버리고, 뜬금없이 타 민족의 정서가 수천 년이나 가꾸고 다듬은 그들만의 고유한 의식을 들여와 제 것과 대체하려고 하는 것은 더욱 기가 찰 일이다.
  박지원(朴趾源, AD 1737∼1805; 영조代 문신)은 '옛것을 본받으며 자취에 얽매이는 것이나 새것을 만든다고 이치에 합당치 않으면 그것이 문제이지, 진실로 능히 옛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면서 법도에 맞을 수만 있다면 새것인들 옛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21)'고 했다. 변화는 오직 자기 것이 중심이 되어 그 안에서 변해야 민족의 혼을 잃지 않는 것이다. 남의 혼을 주입한다고 해서 배달민족이 유대민족이 되는가? 천만다행으로 하늘이 이 민족을 가히 여겨 우매하기 짝이 없는 우리에게 역사의 입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나라나 민족이 망하는 것은 강력(强力)이나 부력(富力)만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민족 전체가 그것을 버렸을 때는 모두가 망했고, 일부가 그러할 때는 외부의 침탈(侵奪)에 시달려야 했다. 민족을 지키는 것은 민족의 혼을 지키는 것이고, 그것을 역사가 일깨우고 있다. 내 것을 버리고 흥했던 나라나 민족이 있었는가? 아직껏 듣도 보도 못하였다. 백범(白凡)은 이런 자를 두고 '제 정신을 잃은 미친놈이라고밖에 볼 길이 없다(22)'고 극언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아마도 민족의 흥망을 말한다면, 동서고금을 통하여 많은 민족 중에 유대종족의 부침(浮沈)이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23) 처절한 그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이나 참담함으로 점철되었음을 보게 된다. 이는 어찌 생각하면, 우리민족이 한 때나마 겪었던 것과 같이 시대의 소명을 게을리 했거나 미개한 민족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운명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 큰 이유는 민족의 정체성이 없었기 때문에 받은 자업자득이었다고 단정해서 말할 수 있다. 정기(精氣)마저 세우질 못했던 모래알 같은 유대종족이 그나마 그것을 깨달았던 것은 끔찍한 고난이 닥친 후였으며, 그때가 바빌론 유수기(幽囚期)였다. - 전 세계를 떠도는 유대인 디아스포라(Diaspora,[히]Galut)의 시작은 이때가 최초이다. - 선민이었지만, 아브라함의 계약(창 15:1-12)을 스스로 깨버리고도 반성을 몰랐었다. 오히려 신이 자신들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하고 버렸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원망했으며, 더 나아가 신에 대해 회의마저 일었었다. 그러나 스스로 서지 못하는 민족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모세가 무엇 때문에 민족을 단합시키고 민족혼을 만들려고 그토록 노심초사하였는지 그때서야 정확하게 읽었으며,(24) 민족이 없어서는 아무 것도 없다는 간단한 진리를 그들이 처음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에스라(Ezra)와 느헤미야(Nehemiah)를 비롯한 일부에 불과한 작은 무리사이에서 각성을 통한 자기반성의 결과일 뿐이었다. - 무언가 절망과 고통 속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희망의 끈을 잡아 주고, 유대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줄 것이 필요하였다. 「창세기」도 그런 맥락에서 엮어졌다. 편집자는 문서의 전후를 바꾸어 P문서의 창조설화(1장)를 앞에 놓고, J문서의 창조설화(2장)를 뒤로 놓아 인간에게 창조의 역사가 집중되도록 의도하였다. 이를 볼 때에 당시 제사장들이 느꼈던 상황의 절박함을 엿볼 수 있다. -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머지 대다수는 여전히 깨이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처지에 따라서는 체념하거나 안주하고 있었으며, 시대정신을 상실한 민족에게 시련의 검은 구름은 깨끗하게 걷힐 수가 없었다. 당연히 뇌옥(牢獄)에 갇힌 겸재(箝制)의 통고나 다름없는 간난(艱難)은 그 후로도 수천 년 세월이 지나도록 지속되었다. 그칠 것 같지 않던 고난의 세월은 전세기(前世紀)에 와서야 그것도 남의 도움으로 간신히 나라다운 나라를 세울 수가 있었으며, 겨우 끝없는 시련의 골짜기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이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깨달아야한다. 역사는 섭리대로 따를 뿐이지 결코 술수를 쓰지 않는다. 제 것을 무시한 대가가 이토록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요즘의 이스라엘인들에게 국가와 민족에 대해서 물어보라. 그 어느 때보다 투철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다. 제 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가 서구로부터 외래종교를 받아들인 것이 도대체 얼마나 되었는가? 유입된 종교란 하나의 외래사상에 불과할 따름임에도 신앙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반만년이나 이루어온 민족의 고유한 정신을 무시하려드는 허황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황당함을 느끼는 것은 기우에 불과할까? 그들 사상에서 무아(無我)란 없다. 존재로의 완성이 지고(至高)의 이상인 그들에게 사유에서의 무(無)란 제외될 대상으로만 인식될 뿐이다. 이것의 이면에는 강한 흡인력을 가진 자기이익(自己利益)의 실현이라는 자아(自我)의 집착이 깔려있다. 따라서 오로지 내 것이 아니면 네 것으로 가르고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에 얽매이게 된다. 벽견(僻見)은 현란한 춤으로 이기를 부추기어 하늘의 한쪽을 갈라 편벽과 폐쇄를 만들었다. 오로지 모세의 하늘을 몰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건하지 못한 타락한 민족이 되고, 악의 축(Axis of evil)처럼 낙인이 찍힌다. 포용이란 이름의 가없는 사랑조차도 그들 안에서 동류(同類)일 때에만이 가능한 인정이 되며, 그렇지 않으면 타도의 대상인 적으로 간주되어 진군의 나팔소리에 휘둘리게 된다. 아이(Ai)성의 참혹한 학살에 대하여(25), '호흡 있는 모든 자는 하나도 살리지 말라(신 20:16)'는 명령이 '언약 백성에게 여호와 신앙을 보존코자 하는 신의 사랑이다'라는 여러 주석의 해설은 듣기에도 끔찍하다.
  역리(逆理)가 뒤섞인 사상의 물결은 범람하는 홍수처럼 수마(水磨)의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우리의 중심을 무너뜨리고 있다. 모순에 싸인 왜곡된 보편성은 진리란 이름으로 오로지 하나라고 주장하는 새 길을 만든다. 한마디로 안타깝고도 고약한 결과가 되는 것이지만, 앞장서는 이들은 쓸개 빠진 일부의 극성맞은 인사들에 불과함으로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우리민족은 유별하다고 할 만큼 제장중정(齊莊中正)이 뜻하는 예(禮)를 지극히 숭상하던 민족이었다. 그러면서도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거나 흐트러지지 않았던 것은 중정(中正)이 조율해주는 청정(淸淨)함이 중심을 알맞게 잡아주었기에 가능하였다. 선비정신도 그 중의 하나다. 선비로서 뿐만이 아니고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여러 덕목(德目)을 스스로 만들고 실천하려는 바탕에도 당연히 담겨있다. 시사명(視思明;볼 때에는 분명하기를 생각한다)이나 견이사의(見利思義;이득을 보면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한다)나 불원천 불우인(不怨天 不尤人;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은 물론이고, 숭조 원시보본(崇祖 原始報本;조상을 극진히 받든다)에 담겨진 뜻과 같이 알맹이 있는 곳에 머물러야하며 겉치레 쪽에 있지 않아야한다. 특히 주이불비(周而不比;두루 친하되 편을 짓지 않는다)는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난마(亂麻)같이 얽혀있는 오늘날의 오도된 가치와 달리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고 사람답게 사는 바른길을 가려하는 채찍질이었다. 이것이 어찌 선비정신일 뿐이겠는가.

  개천절은 배달민족이 고고성을 울리며 만유(萬有)가운데에 존재감을 나타냈던, 우리 민족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성스러운 날이다. 이날은 겨레의 끝없는 소망이 얻은 결실로 빛이 열린 날이요, 뜻 그대로 하늘이 만들어 논, 우리 민족이 갈 길을 열어준 우리의 날이다. 혼란과 암흑을 잠재우고 햇빛 찬란한 하늘이 열린 날이다. 그러므로 이날을 기리는 것은 찬란한 미래를 향한 전진(前進)을 굳게 다짐하기 위해서 행하는 의지의 확인이요, 자기 검신(檢身)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서글프기 짝이 없다. 온 겨레가 나서서 성대히 맞이하여야할 축일(祝日)임에도, 일부 종교 창시자의 기념일은 고사하고 이제는 어린애들 사이에서 열병처럼 번지고 있는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보다도 못한 허접스런 날로 위상이 추락하여 본래의 근본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외래종교와 서구의 유물론적사고가 곡해(曲解)된 채로 이 땅에 유입되면서 벌어진 현상으로 개탄스럽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한손에 성스럽다는 표징(標徵)을 하늘높이 쳐들고 거창하게 구호를 외치는 것도 그렇다. 편벽에 싸여 있으니, 결국은 눈앞의 이(利)에 얽매어 앞뒤 안 가리고 날뛸 뿐으로, 이제는 차고 넘치니, 근래에 들어와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이 단군을 국조(國祖)로 받들기는 고사하고 우상 정도로 가벼이 여기는 것을 쉽게 목도(目睹)하는 아픔을 겪게 된 것이다. 개천이란 뜻 그대로 어두운 굴레를 벗어나 밝은 세상을 열어 제치고 미래로 전진하는 첫 번째 발을 뗀 날로 민족의 존재감을 세상에 공포한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이날의 정신을 오도(誤導)하거나 개천의 의미를 탈색시키는 짓은 역사를 부정하고, 민족의 정서를 무시하고 헤치는 행위로서 용서할 수 없는 짓거리이다.

  마태(Matthew)와 누가(Luke)는 예수의 혈통을 세우기 위해 노심초사하였다. - 신약에는 왕 또는 제사장으로서의 예수그리스도의 족보가 두 곳에서 보이고 있다.(마 1:1-17, 눅 3:23-38) 둘 다 요셉의 족보로서, 마태는 법정족보를, 누가는 혈통족보를 보여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마태는 요셉의 족보를, 누가는 마리아의 족보를 기록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 우리 모두는 그들 주장대로라면 아담의 자손이니 굳이 혈통을 가를 이유가 없음에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으로 유대의 순수한 혈통을 이어받은 순결한 피를 가진 유대인임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뜻하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세계를 구원할 구세주로 불리고, 만인의 왕이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한낱 조그마한 유대의 혈통에 얽매이고, 뿌리를 세워 그것을 강조하며 우리와 유별(有別)하려 했겠는가? 그러니 이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예수교를 믿어야 하겠다하면, 삼두락(三斗落)밖에 못되는 토지를 톡톡 팔아 교당(敎堂)에 바치는(26)' 이는 있어도,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마저 마구 팔아버리려는 막무가내인 자는 있어도, 마태처럼 제 것을 위하여 혈통을 증명하려는 이가 없는 것이 슬프다.
  서글프지만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민족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였음에도 자중지란으로 날을 세는 민족을 깨우쳐 유대를 바로 세우려했던 모세의 절박함이나 외래의 사상과 문물로 황폐화된 민족의 정기를 바로 잡아야하는 우리의 다급한 처지가 다르지 않으며, 그가 뜻대로 이루었듯이 우리 또한 기필코 그러해야 한다. 국조 단군이 홍익인간을 앞세워 재세이화(在世理化=진리가 넘쳐나는 세상)로 아우르고 가다듬으려는 것이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교리에 못지않은 이상이다.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마태가 나올 것이다. 오호 통재라! 사사로움이 없고, 언제나 선한 사람 편에 서고,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면서도 다투는 일이 없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위치하는 물과 같이 진정성과 보편성을 가지며, 천도(天道)로서만 만물을 다스리는 하늘을 바랐건만, 오로지 내편이 되어야지만 선(善)인 하늘로 바뀌려 한다. 모나지도 앞서지도 않는 마음가짐을 제일로 삼았던 이 민족이 달라지려한다. 이제는 소중하게 여겼던 균형의 가치인 중정(中正)마저 과거의 유물처럼 팽개치고, 혼돈의 심연으로 빠지려 한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하늘이 내린 본성(天命之謂性)'은 아닐 진데, 성정(性情)의 덕은 어디에다 잃어버렸을까?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AD 1880∼1936)가 내지르는 소리가 귀를 찢는다.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이것은 노예정신이다.(27)"


  우리가 한때의 시대조류를 잘못 읽어 강압의 시대에 얽매이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그로 인하여 시대의 오욕(汚辱)이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기도 하였으며, 너무도 가혹하게 스스로를 때려 꺾었던 시대도 있었다. 극심할 때에는 내 것조차 버림으로써, 주저 없는 패륜(悖倫)으로 동족끼리의 반목을 낳는 천추의 한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 때는 희망 없는 암울한 두려움이 온 몸을 짓누르고 이겨낼 수 없는 공포가 겹겹이 혼돈을 만들고 깊이모를 흑암(黑暗)으로 둘러싸였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의 짐을 모두 벗어버렸다. 비록 역사의 한 때나마 우리 자신을 업신여긴 탓으로 씻지 못할 오욕이 씌어졌고, 영원히 감내해야하는 오명이 남게 되었지만, 슬픔은 이제껏 만으로 끝내야한다는 소명의식이 우리를 바꿨다. 역사는 끝도 없이 반복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과거의 역사가 아무리 치욕적이었다고 할지라도 그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타산지석으로 삼는다면 민족의 앞날은 번창할 것이요, 과거의 역사를 그저 지나간 역사로만 인식하고 덜 깨인다면 지나간 고통보다 더욱 참담한 역사의 철퇴를 맞을 것이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 연민의 정 때문인가? 우리는 그 속에서 교훈을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또 다시 되풀이 되는 오욕의 역사를 막아내고, '번영을 위한 초석'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내 것을 천대하는 어리석은 짓일랑 그만두고, 우리 모두 한 뜻으로 힘을 모으고 분발해야 한다.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사회생활을 훌륭히 영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승에서의 나의 귀한 삶이 종교로 인하여 타격을 받는다든지 짐이 된다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수없는 사례에서 보듯이, 그것 또한 과유불급이나 마찬가지이니 없느니만 못한 결과가 된다.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이 물질이고, 그 중에서도 돈은 인간생활에서 없어서는 아니 되는 소중한 물건이다. 그러나 돈에 얽매이면 올바른 구실을 못하는 수전노(守錢奴)나 다름없게 된다. 비록 종교가 돈보다는 차원이 훨씬 높은 격이라고 하지만, 그것 역시 인간의 필요에 의해 발명된 하나의 사상일 뿐이고, 인간의 삶을 도와주는 방편에 불과하다. 그것이 나나 민족보다 앞설 수 없는 것임은 명백하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제 것을 업신여기고도 잘된 민족은 여태껏 하나도 없었다. 2부를 시작하면서 2개의 상반된 예를 들었다. 이성(理性)은 각자에게 공평하게 골고루 주어졌음으로 책임도 각자에게 있음을 명심해야한다. 남의 탓이 아니다. 나를 정확히 알고 바로 세워야 한다.

  이게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우리 얘기로 끝을 맺는다. 이승의 나는 반딧불이가 깜박이듯이 한순간의 흔적만 보이다 사라지는 생명이 아니다. 모든 것의 주체는 본성인 나임을 삭히고 알아야 안개에 가려진 어두운 길에서 청명(淸明)함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어느 날 없던 것이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어야 청정(淸淨)함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어느 날 이승에서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나의 본성이 만유의 한 부분에서 없었진 것이 아님을 읽을 줄 알아야 달관(達觀)의 삶을 살 수가 있다. 지금의 나는 연속의 한 순간에 있는 나일뿐이지 어느 곳에 얽매였거나 갇혀있거나 끊어져서 그 끝이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다. 이 순간에 나라고 인식하는 삶은 영겁(永劫)에서 한 각(角)으로 주어진 이승에 해당하는 시간일 뿐이다. 그러니 옛날 것이 무엇이며, 오늘 것은 어디에 있느냐? 하물며 내일 것이야. 그런데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무한한 연속으로 이어진 중에서 마디 하나로 주어진, 수명(壽命)이 필귀종(必歸終)인 이승의 세계를 애써 떨쳐버리려는 어리석음이 깨달음의 길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나약해지는 것은 이승의 제 삶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허황된 꿈 때문이다.(28) 진리를 자기의 본성에서 구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찾으려는 집착을 버려야한다. 그런데도 하늘을 알려고 하는 인간의 망념이 순자(荀子)의 말처럼 '사람들이 아는 것은 다만 이루어져 눈에 보이는 것에 불과하며 그 보이지 않는 무궁한 세계는 알 수 없다는 것(皆知其所以成 莫知其無形)'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 줄도 모르고 하늘이 제 편이고, 다 아는 것처럼 뭇사람들을 호도하려한다. 그리고는 갈망의 기도라는 하나의 방편을 들고 나온다. '신을 믿어야 한다. 신이 해주지 않겠느냐. 어찌 못할 일을 맞기겠는가? 오랜 세월의 노력과 희생을 요구하고, 끝없는 시련과 수많은 고난을 당하도록 섭리한 것은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문제가 있어도 해결은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온갖 난관에 부딪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눈물로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은 그것을 믿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어디서 자주 들어왔던 소리이고, 언뜻 듣고 있으면, 거슬리거나 나무랄게 전혀 없는 좋은 소리처럼 들린다. 알 수 없는 막연한 것임에도 희망의 끈을 잡고 있는 듯 도취케 하고, 은연중에 그것에 매달리게 유도한다. 그러나 이는 기껏해야 무엇인가에 심히 '목마른 구나(gunas)'가 내는 육(肉)의 얕은 소리일 뿐으로 비즈나나(vijnana=분별적 지식)조차 얻지 못해 성정(性情)을 극단으로 치닫게 만들뿐이다.(29) 우리가 주위에서 이런 소리를 듣는다면 모두 다 마찬가지로 별 꼬락서니를 다 본다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는다. 우리의 소망이 현실로 바뀔 수 있다는 기복(祈福)은 더할 수 없는 교만임을 깨우쳐야한다. 세상적인 물질을 구하는 것이나 만사형통을 바라는 것은 맘몬(Mammon)의 바알(Baal)을 부르는 짓이며, 악마의 덧에 걸리는 지름길이다.(30) 신이 아담에게 이름을 지으라고 명령한 것이(창 2:19)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는 데에서 나온 허튼소리이다. 태초에 혼돈에서 천지를 끌어내어 육안(肉眼)의 세계인 우리 앞에 그것을 놓아주었으니, 그 후로 밤과 낮이 있음으로 시종(始終)이 있음을 어찌 잊고 있는가. 우리가 무명(無名)(31)의 시기에서 이름이 지어졌음은 존재가 되었음이라. '그 밖의 세상'으로 쫓겨나고서도 아직도 여섯째 날에 갇혀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이 무수히 많으니 실로 안타깝다.

  기도(祈禱)는 신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상호통신체계로는 훌륭한 수단이다. 따라서 그들만이 느낀다고 하는 영적인 교감이라 해도 가타부타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상아삼상의 변모로써 차고 일그러지는 기복(起伏)이 있고, 생겼다 사라지는 생자필멸이 변함이 없는 것은 137억 년 전부터 이어진 '생멸(生滅)의 섭리'인데, 이에 어긋나는 모순에 스스로가 빠지는 신은 없을 것이다. 신은 결코 이승의 세계에까지 나서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의 궁극은 나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고, 기도는 지금의 나를 스스로 위로하는 행위이며, 다음 세계를 향한 일종의 추파에 지나지 않음을 깨우쳐야한다. 이승인 현상계의 실유(實有)는 기도로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물리법칙만이 존재하는 그것과는 별개이니 착각에 빠지지 말아야한다. 진실로 일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이승의 삶을 축복으로 보지 않는 나약함에 있다. 섭리는 결코 따로따로 적용되지 않는다. '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인간에게 베풀어지는 긍휼(삼하 24:14, 시 79:8, 애 3:22)'이나 '범죄를 일삼는 인간에게 베풀어지는 인내(출 34:6, 롬 9:22)'도 신의 선이듯이, '인간에 대한 계시와 행위 또한 진실하시다.(시 117:2, 신 7:9)'는 것도 자연계의 현상과 차이가 없다. 필연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진화의 한 단면인 생멸(生滅)과정과도 같기 때문이다. 지진이 나고 화산이 폭발하고, 해일과 폭풍이 들이 닥쳐 천지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것도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관점에 따라 혼란일 수도 있고, 정돈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최선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냉혹해서가 아니라 그것조차도 주관하는 모든 것의 하나이기 때문이며, 피조물은 존재 목적에 맞게 씌어질 뿐이다.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의 세계를 배격하고 있지만, 성경말씀의 요지(要旨)에도 그처럼 자연의 섭리가 원용(援用)되고 있다. 그 내용을 인간 역사의 하나의 흐름으로 본다면 진화 또한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진화는 생물학적인 범위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세기별로 문화나 사회체계가 발달하여 달라지는 것도 마찬가지로 진화의 한 단면이고, 여러 과정에서 최선의 선택을 향하여 나아가는 중에 얻어진 결과물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자연은 모세가 「창세기」를 쓰기 훨씬 전부터 섭리로 운행되고 있었으며, 쉬지 않고 인간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 점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렇다고 바뀌지는 않는다. 출애굽기 12:40절의 -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Now the sojourning of the children of Israel, who dwelt in Egypt, [was] four hundred and thirty years.) - 내용이 맞느니 아니니, 역사적 사실이니 아니니, 굳이 가를 필요도 없다. 그것은 우리와 관계없는 그들의 과거사일 뿐이고,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진화의 결과는 미사여구로서 치장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바로 잡아야하는 내 것이다. 하늘은 제 것만 찾으려는 차별이 없다. 가르려는 분외 또한 없다. 그것을 인간의 탐욕이 분별 짓게 만들어 놓았다. 그렇다고 인간이 천공(天功)을 알 길이 있는가? 하늘은 하늘로서 취해야할 일이 있고, 인간은 인간으로서 할 일이 따로 있다. 인간이 제멋대로 하늘을 갈라놓고는 제 하늘이라고 우기지만, 인간이 그런다고 하늘이 갈라지기라도 하는가? 일체임에도 '같음과 개별(同別)'처럼 되고, '하나와 다름(一異)'을 스스로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우리의 자성(自性)은 더렵혀진 것이 없는 본디 천연(天然)이 그대로이고, 모든 것은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고 하였으니 민족의 희망이 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32)


  이집트나 수메르(Sumer)는 물론이고,
  홍산문화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배달민족의 역사가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영겁의 세월 속에서 반복하듯이
  역사 속에서 덧없이 뜨고 진
  지나간 문명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고대문명의 시작이 늘 그렇듯이
  인류가 음(陰)의 역사를 벗어난 그 즈음부터 시작하여
  천년이 넘도록 범람하는 물줄기와 뒤범벅된 진흙구덩이에서
  인류최고이며, 최대였던 문명을 이룩하고,
  그것을 그대로 후손에 물려준 그들의 고원(高遠)한 정신은
  인류에게 복된 유산(遺産)으로 오랜 세월을
  도도히 흘러내려오며 비껴갈 수 없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메르를 보라!
  『인간은 흙에서 나왔기에
  땅을 일구며 일해야 하고 흙으로 돌아간다.』

  황금장식도 없다.
  성물(聖物)로 받들려지지도 않았다.
  보잘것없는 점토판(粘土版,Tablet)에 불과하지만,
  그곳에 뚜렷이 새겨 후대의 지표가 되도록 남겨준
  이 한마디의 진리에 담겨있는 위대한 근본사상은
  인류의 이정표가 되어 후일에 이루어진 성경을 비롯하여
  모든 것들의 정신에 그대로 스며들어 갔으며,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을,
  일부의 인간집단들이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려고해도,
  무엇보다 바르게 하고, 더불어 풍성하고 충만하게 만든다.
  본(本)을 어디에다 두어야 하겠는가?

  내 것이니 당연히 지켜야하는 것은 애들도 안다.
  이는 세상이 있고나서 함께 한 진리이며,
  우주의 기원에서부터이니 그 기간이 137억년이나 되었다.
  태양이 태양이면서 달이기까지 한다면,
  질서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를 깊이 새겨야 한다.
  조상에게 내 방식대로 절을 했다고 탓이 된다면,
  안 믿는 편이 오히려 났다. 그것이 바른 길을 찾는 것이다.
  우주의 공리(公理)에는 치우침이 없으며,
  모든 것은 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곳은 원각(圓覺)이요,
  태초(太初)이며, 태일(太一)이라 부른다.
  시(時)도, 공(空)도, 물(物)도.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탄생과 죽음, 번뇌와 해탈, 부활, 영혼, 천국, 극락, 지옥….
  인간을 비롯하여 만유(萬有)의 근원이 그것에서이다.


* ⒂ 허버트 M. 울프 著/엄성욱 譯,《오경개론》, 제3장 창세기/5.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2) 족장들의 사실성(史實性) 註66 헤르만 궁켈(Herman Gunkel), 1984, 《The Legends of Genesis》 인용.

* ⒃ 한상인 著, 1997, 《족장시대의 고고학》
  저자는 족장시대의 사실성(史實性)을 증명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기도 하지만, 끝맺음 말은 시사 하는바가 크다. '/…/이렇게 해서 족장들의 사실성은 확인되었고 그들이 생활하던 시대는 중기청동기시대(MBA Ⅱ)인 것이 파악되었다. 명확한 고고학적인 증거나 문헌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결코 족장시대의 사실성을 부인할 수 없는 정도의 증거는 제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책 한권에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신학자의 입장이라면 그 정도로 적당한 선에서 얼버무릴 수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학자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해괴망측한 결론이다.

* ⒄ 키스 W. 휘틀럼(Keith W. Whitelam), 2003, 《고대이스라엘의 발명》
  저자는 '침묵당한 팔레스타인 역사'의 실체를 밝히려고 학자적 양심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는 오늘날의 기독교의 성장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바꿔치기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는 두 축이 교묘한 틀 속에서 이뤄놓은 허구임을 찾아냈으며, 고대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실체가 아니며, 유럽 국민국가, 나아가 서양 근대문명을 합리화하려는 학자들에 의해 발명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지금도 전 세계에 넘쳐난다. 당연히 우리도 그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히브리사람들이 그들 민족을 내세우고, 그 전통을 이어나가려는 것에는 쌍수로 들어 좋아하면서도, 제 민족의 유구한 역사가 훼손당하는 일에는 무관심에 죄의식도 느끼지 못한다. - 단군이 국조(國祖)인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것이지만, 민족의 정체성확립은 그들로서는 크나큰 방해 요소로 인식한다. -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서양의 우월적 내셔널리즘의 숨은 의미에 무신경하고, 이제는 보편성까지 얻은 믿음과 구속이라는 논리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백 년 전 단재 신채호의 우려가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 ⒅ 진화(進化,evolution)는 주어진 생태적 조건에 최상으로 접근해 가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진화의 궁극적인 원리는 적응이 아니라 변화와 창조적인 다양화이며, 자연계는 개체들 중에서 환경에 적합하고 우수한 것을 선택하여 번식이 가능하게 하고, 열등한 개체들은 도태시키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부드럽고 확실하게 그 과정에서 이루어 나간다고 할 수 있다. 40억 년 전 처음으로 지구상에 생물이 출현하였다. 이후 지구상의 생물은 진화의 원리에 의하여 보다 높은 복합성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진화 조건들을 언제나 조성해 왔다. 이는 생물이 '수평 및 수직 벡터에 의한 유전정보의 전달 메커니즘을 갖추게 됨으로서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변화에 대하여 보다 향상된 적응력을 갖추게 되었다.' 성숙상태에 있는 각 생물의 여러 기관의 분화 및 특수화된 - 여기에는 지력(智力)의 목적을 위한 뇌의 발달도 포함된다. - 양을 고등한 체제의 표준으로 할 때, 자연선택은 분명히 이러한 표준을 향해 유도되어 갈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생리학자들은, 기관의 특수화는 기관이 그 상태에서 가장 잘 작용하는 한 그 생물에 대해 유리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 ① 찰스 다윈 著/송철용 譯, 2009, 《종의 기원》/제 4장 자연선택 또는 적자생존
- ②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한 개체의 미시적인 작은 변화라도 우주적 거시변화에 속한 하나다. 우주의 거시적 진화는 미분화된 질서와 복잡성이 전개되는 역사로 이루어진다. 프리먼 다이슨(Freeman J. Dyson)이 《우주속의 에너지(Energy in the Universe)》를 통해서 지적했듯이 '우주에너지의 기원과 운명이 한 개체의 생명 및 의식 현상과 분리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생명 있는 것들에 주어진 진화는 처음의 생성에서부터 시작되어 발전과 소멸이란 과정을 거친 후에 새로운 탄생이란 반복되는 순환의 질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하나가 지구에서의 생명탄생이고 진화하는 우주의 한 부분이다. 이를 분명히 인식할 수가 있다면, 우리생명의 기원이 인류가 신을 발명하기 훨씬 전인 137억년이나 아득한 과거였으며, 그때의 내가 오늘의 나였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③ 에리히 얀치(Erich Jantsch) 著/홍동선 譯, 1995,《자기 조직하는 우주(The Self-Organizing Universe)》/제2부/#8 사회 생물학과 생태학 : 생물과 환경
- ④ 찰스 다윈 著/송철용 譯, 전게서/제 4장 자연선택 또는 적자생존

* ⒆ 찰스 다윈, 1871,《인류의 유래》, '신에 대한 믿음은 종종 인간과 동물을 구분해 주는 가장 커다랗고도 완벽한 차이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주지하고 있듯이 이런 믿음이 인간에게 타고난 것이라거나 본능적인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반면에 모든 것에 고루 미치는 영적인 힘에 대한 믿음은 보편적인 것 같다. 또한 이런 믿음은 인간의 이성적인 능력이 발달하고 상상력, 호기심, 두려움 등이 더욱 발달하면서 나온 것임에 틀림이 없다.'

* ⒇
 - 홍산문화(紅山文化) : 1935년 요녕성 적봉시(赤峯市) 홍산(紅山)에서 최초로 발견되었으며, 주로 요녕성(遼寧省) 서부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홍산문화는 농경과 유목생활을 겸한 시대다. 토기는 크게 2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진흙으로 빚은 홍도(紅陶)이고, 또 다른 한 종류는 사질(砂質)의 거친 토기(夾砂褐陶)이다. 주요한 것은 관과 발인데, 위에는 그림무늬나 빗무늬(篦紋)가 있으며, 아래에는 자리무늬(席紋)가 있어 몽골 초원지대에서 출토된 세석기문화(細石器文化)의 빗무늬토기와 유사하다. 진흙으로 빚은 홍도의 관에 장식된 글자 가운데 빗무늬가 나타나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2가지 문화요소가 이미 홍산문화시기에 융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홍산문화는 옛 조선민족의 하나였던 예맥족(濊貊族)문화로 본다. 홍산문화는 고조선의 선대문화이고, 하가점하층 및 위영자문화는 고조선시대문화이다. 하가점하층문화에서는 70여개의 성이 발견되는 등 완전한 국가형태를 띠고 있으며, 발굴된 인골은 인류학적으로 고(古)동북인(東北人)에 속한다. 단군의 고조선 건국연대가 BC 2333년이며, 이는 하가점하층문화와 연대가 일치하고 출토된 유물도 단군신화의 내용과 맞는다. 특히 적석총과 석관묘의 기원을 시베리아로 보고 있는데, 홍산문화지역에서는 이 보다 2000년이나 앞서 같은 유물이 나왔다. 이는 우리문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묘제를 같이 썼다는 것은 문화 및 인류의 동질성까지 유추할 수 있다.
 - 하가점문화(夏家店文化) : 1960년대 초에 허가점촌에서 신석기 문화층인 홍산문화와 다른 새로운 청동기문화유적층을 발견하였다. 하가점촌은 서요하(西遼河)의 남쪽 상류인 노합하(老合河)의 중류에 있으며 적봉에서 동쪽 15km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이 청동기 문화층에는 BC 14세기를 기점으로 하여 성격이 다른 두 개의 문화가 존재하며, 하가점하층문화(BC 2000∼BC 1500)와 하가점상층문화(BC 1100∼BC 300)로 이를 구분하여 동일계열의 청동기문화를 분석하는 데에 대한 기준점으로 삼고 있다. 적봉 하가점지역은 역사적으로는 고조선의 권역으로 볼 수 있는 지역으로 이곳의 대표적인 청동기유물에는 고조선문화의 지표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비파형동검이 포함되어있다. 따라서 고조선의 영역이었거나 고조선의 영향을 일정부분 받아온 인접한 문화권으로 본다.

* (21) 박지원,《초정집서(楚亭集序)》, '法古者病泥跡, 創新者患不經, 苟能法古而知變, 創新而能典, 今之文猶古之文也.'

* (22) 김구, 《백범일지/나의 所願/1. 민족국가》, '근래에 우리 동포 중에는 우리나라를 어느 이웃 나라의 연방에 편입하기를 소원하는 자가 있다 하나,/…/그는 제 정신을 잃은 미친놈이라고밖에 볼 길이 없다./…/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이 모양으로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성쇠 흥망이 공동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위에 남는 것이다.'

* (23) 유대민족이 《구약》에 기록한대로 역사의 처참한 현실 속에서 민족의 부침을 이겨내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지만, 그러나 이는 유대민족만이 겪었던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인간사에서 흥망성쇠는 어느 민족에게나 일어나는 다반사였으며, 그들의 잘못으로 신에 의해 벌을 받았다는 해석이나, 다윗과 솔로몬의 영화가 축복이라는 근거도 그들만의 것이며, 신의 징치로 나라를 잃어버린 것도, 저주를 받아 한 민족이 한 시대에 멸족된 것도 똑같다. - 노아의 대홍수나 소돔과 고모라의 불세례는 유대민족에 국한된 창조설화이다. 우리가 노아의 대홍수로 인하여 전 인류가 멸절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실상은 불가능한 것이지만, 전 세계 175개나 되는 대홍수설화마다 인류는 멸절한 것이 된다. 신은 인간이 발명해 놓고, 도대체 얼마나 참혹한 지옥을 경험해야 하는가. -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편의에 따른 해석일 뿐이다. 유대민족보다 더 참혹했던 민족의 말살이나 더한 고난을 겪으면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민족도, 더한 번영과 광영을 누린 민족도 역사 속에는 수없이 들어있다. 그들도 유대민족처럼 그 하나하나가 축복이었을 때도 있었고, 저주로 길을 헤맬 때도 있었다. 덕(德)을 쌓으면 하늘로부터 천명(天命)이 내렸고, 부덕(不德)하면 노(怒)한 하늘로부터 천벌(天罰)을 받았다. '하늘의 도에는 사사로움이 없고, 언제나 선한 사람 편에 선다.(天道無親, 常與善人. 《老子》「道德經 第79章」'고 하였음에 비추어 무엇으로 잘되고,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 (24) 유대종족은 힉소스왕조가 이집트를 지배하던 시기엔 고센의 비옥한 토지를 차지하며 풍족하게 살았지만, 힉소스왕조가 멸망당한 이후에는 서서히 피지배계층으로 전락하였다. 모세(Mwu>sh'", Moses)는 사생관두에 놓인 민족의 장래와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하는 것이 시급히 해결해야할 선결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렇다고 강력한 제국의 힘에 맞서 강력(强力)으로 맞설 수는 없었다.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종족을 하나의 종교공동체로 묶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이며, 이를 달성키 위한 방편으로 신의 말씀을 앞세워 창조신화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임을 깨달았다. 그가 천지창조를 선언한 「창세기(創世記,Genesis)」를 비롯하여 오경(五經)을 저술하며 원죄를 신의 의지(God Wills)로 표현한 것은 모래알처럼 흐트러진 민족을 일으켜 세우고, 결집시켜야하는 고심이 그 안에 담겨있다. 창세기 12장 이후에 아브라함(창 17:6-8, 22:11)과 이삭(창 26:4)과 요셉(창 28:3,14, 35:11)에 대하여 상세하고도 집중적으로 다룬 것은 끊임없는 외세의 압박을 이겨내고, 히브리민족이 성장하고 발전한 경위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모세는 이 과정에서 선민(選民)이라는 히브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하여 족장 아브라함에게 초점을 두었으며, 신으로 하여금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려고 불러내도록 하였다. 이것이 실질적으로는 창세기 이후로 '세 번째 시작'이 되는 셈이고 당위성을 찾아낸 것이다. 신은 그들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찌어다'(레 11:45) 라고 축복이 담긴 명령을 내렸다. 그들 삶의 가치의 전부는 신의 의지에 의해서 표현되지만, 이는 신의 불변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여 히브리민족을 단결시켜 반석위에 튼튼히 세운 것이, 유대민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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