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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반야(般若)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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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반야(般若)여


Ⅰ. 난(蘭)의 전설

친구여!
어젯밤 꿈속에서 잃어버린 전설을 보았다네
동방박사 인도해준 베들레헴의 별을 쫓아
천년의 침묵이 열어 논 길 놓칠세라
지리영산(智異靈山) 가는 길을 암팡지게 따라갔네
짙어가는 노고(老姑)의 구름바다 뒤로하고
산자락을 굽이도는 섬진강 물줄기 바라보며
아르고 별자리 카노푸스 눈짓하는 반야봉에 올랐네
남쪽기슭 큰 바위 바싹 붙어 어둠을 조심스레 돌아가니
내 마음을 송두리째 인도한 곳, 생명의 빛이 넘실대는
속세에 감춰진 하늘의 영지가 고즈넉이 있었네

초록의 대지가 가없는 품으로 거둬들인 생명의 씨를
싱그러운 바람과 풋풋한 햇볕이 어루만져
소담스런 자태에 함초롬히 피어낸 신의 꽃이 있다네
수줍은 듯 갈매 빛 이파리에 아롱진
새하얀 꽃무늬가 싱긋이 웃다가
실바람 소르르 불어와 간지럼을 태우면
한껏 머금은 그 속을 살짝 열어, 도드라진 향기를
지나는 바람결에 붙여 하늘높이 내고는
응답으로 쏟아지는 여린 햇살 다소곳이 받는다네
그 옛날 번성했던 우리의 난이라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반야의 풍란(風蘭)이었네

예부터 그곳에는 풍란에 얽힌 전설이 있었네
구름 덮여 얼굴만 삐죽 내민 반야봉 저편
해 오르는 동쪽 끝에는 천왕봉이 솟아있고
성모신(聖母神) 마야고(摩耶姑)가 온 산을 다스렸지
사모하는 마음은 천리 길도 마다하고
하늘땅 경계도 막을 수 없었는지
수도승 반야를 사랑하게 되었다네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었다고 전해오지
살갑고 곰살가운 금실 좋은 부부는 예쁜 딸 여덟 낳아
팔각소반 떼어내듯 하나씩 나눠줘 여덟 세상 다스리니
하늘에서 땅에서 모두 다 기뻐하며 좋아했네

오호라! 즐거움이 지나면 슬픈 일이 오는가?
반야봉 하늘아래 불 밝힌 이별은 기약조차 없다네
정(情)붙여 보낸 임, 지혜가 무르익어 돌아올 날
세월 갈까 조마조마, 두려워서 조마조마, 손꼽으며 조렸네
보채거나 재우치지 않고 그 날만을 기다렸네
임 떨어진 그 세월이 얼마인데, 이것이 왼 일인가
무정한 그님은 속세 떠난 빛으로 돌아왔네
반야는 조용히 말했다네
그녀를 만난 일은 윤회의 속박이요
깨달음을 얻었으니, 나란 어디 있나
아수라의 농간인가, 전생의 업보인가?
반야의 등성이에 얹혀있던 몇 무더기 구름떼가
눈사태 나듯 가파른 계곡 따라 한 없이 쓸려간다

눈물로 기다렸던 그리움은 미움으로 뒤집혔네
하나 둘 쌓인 한숨 원망으로 바뀌었네
나뭇결 잘게 풀어 껍질 실로 만든 옷
들인 정성 아까운데 분노의 손끝은 여지가 없었다네
쏟은 정을 가리가리 조각내
정 하나에 미움 열 얹힌 저주, 하늘높이 내던졌네
원망타고 떠돌던 조각들은 반야에 내려앉아
얼기설기 얽힌 주검, 문드러진 죽음마다 생명이 되살아나
바람타고 태어난 반야의 풍란이 되었다네
천년의 고통을 속에 담은 세월이 아까운 사랑과 미움으로
십년을 하루처럼 조금씩 큰다네
때로는 웃음과 만족 주는 사랑으로 크지만, 어느 때는
기다림이 필요한 미움으로 자라나 알 수가 없다네




Ⅱ. 반야(般若)를 찾아서

친구여!
조급한 마음에 하루해가 일 년 같네
새벽닭 기다리다 지친 새날의 여명이
깊이 잠든 어둠을 흔들어
동녘하늘의 보랏빛 궁창을 조금씩 걷어낼 때
하얗게 샌 눈을 손등으로 달래면서 한 걸음에 달려갔네
안평대군 꿈에 본 몽유도원 찾아갔네

"이 세상 어느 곳이 꿈꾼 도원인가?
은자의 옷차림새 아직도 눈에 선하거늘
그림 그려 보아 오니 참으로 좋을시고
여러 천년 전해지면 오죽 좋을까
그림이 다 된 후 사흘째 정월 밤
치지정에서 마침 종이가 있어
한마디 적어 맑은 정취를 기리노라"

하늘높이 걸렸던 밝은 해도
이레째의 제 할일을 끝내고
다도해의 섬들을 베개 삼아 쉬려고 내려왔네
오늘도 어제처럼 흙투성이 몸을 하고
구름 덮인 반야봉 하늘 밑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시덤불 거친 풀숲 되작일 땐 거칫거려 잠시 쉬고
외줄기 경사 길엔 이리저리 몸 비틀며
어제까진 희망으로 발을 때고, 오늘은 한숨으로 찾았다네
깊은 산속 달콤한 방향(芳香) 찾아 이리저리 헤맬 때는
무심한 바람마저 메꿎게도 여기저기 훼방만 놓았다네
무성한 산죽은 갈 길 바쁜 나그네의 발목을 끌어 잡고
지아비를 잃어버린 여인네의 서린 한(恨)은
옷자락을 잡아끌며 가는 길을 단단히 막아섰네

우뚝 솟은 동편 끝 멧부리의 하늘이
빛으로 열리는 여드레째 되는 날의 해맑은 아침에
반야의 중턱에다 정성껏 제물차려
미움으로 사무친 그 마음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지친 몸에 한줌 남은 힘을 다해 정상에 올라섰네
넘치는 희망을 가득안고 다다른 신의 영지에는
달콤한 향(香) 그윽하게 싱긋 웃는 풍란은 간데없고
어디에서 왔는지 한 가닥 바람이
반야의 풍란소식 전한다며 옛일만을 주절댈 뿐
뜬금없는 소리만 한바탕 늘어놓고 눈치 없이 사라졌네
잘 달구어진 날카로운 칼로 두 동강이 내듯 확연하지 않아
저무는 하루가 못내 안타까운 나그네처럼
한 무리의 산새도 지는 해에 못다 한 아쉬움이 남았는지
멀찍이 떨어진 계곡위서 한참이나 지절대다 내려갔네
자취 없는 뜬소문엔 만사가 그렇게 휴의가 되었네

산허리를 맴돌던 안개구름은
한풀 꺾여 뿌옇게 바랜 희망이 그런 것처럼
반야의 계곡을 희멀겋게 물들이면서 말했네
처음에는 아래쪽 깊은 곳에서 한 아름 꿈을 안고
끊어질듯 이어지며 골안개로 피어나
바람 따라 짙푸른 들판을 신나게 달리다
그 넓이를 채울 양으로 욕심껏 엷게 펴다 흩어지고
어느 때는 신에게 지혜를 빌렸는지 한데모여
뭉게구름 피어나듯 부풀린 모습으로 크게 피어올라
가파른 산위까지 오르려고 안간 힘을 다한다네
그럴 때는 높이에 힘이 부쳐 뿌연 살결 내보이다
용케도 산허리를 감돌던 안개구름 된다고 말하네
비난과 수치를 동반한 가치 없는 짓이라고 놀리는 것인지
오롯하지만, 영광을 열망하고 명예를 구하려는 신성한 것인지
무엇을 뜻하는지 야지랑스럽게 말했다네

짙게 깔린 안개는 농담(濃淡)의 조화를 부리며
결 따라 높다랗게 쌓이더니 이제는 발치아래 계곡에서
산위의 비틀려 허리 굽은 보드기 위까지 장막을 쳤다네
무언가를 내보이기가 두려웠을까?
눈앞에 보이는 들녘의 모든 것을 호리병에 집어넣듯
그 안에다 감췄는지 아무것도 볼 것이 없네
태초의 적막을 되찾은 반야는 고요만이 감돌뿐
가누지 못하는 마음만큼이나 무겁게 짓누르는 침묵이
헤아릴 수 없는 깊이로 더욱더 깊어져갈 뿐일세
친구여, 목마른 기도는 깊은 좌절의 골짜기로 곤두박질쳐지고
실 날 같은 마지막 희망은 질곡의 늪으로
너무도 가혹하게 슬픈 탄식에 싸인 고통과 함께 쓸려갔네
이제는 좌절과 낙담에 익숙했던 한 백성에게 내려준
지팡이처럼, 이적(異跡)이나 기적이라도 바라야만 하는가




Ⅲ. 그리운 반야(般若)여!

친구여!
어리석은 나그네의 허전해진 가슴에는
쓰라린 회한만이 쓸모없이 남았다네
조갈증에 걸린 환자가 물 찾듯이
쉼 쉬는 일도 아껴가며 있는 힘껏 헤맸으나
육안으로 보는 모습 언제나 그뿐이었네
찾는 짓에 미립이 났다한들, 솔로몬의 지혜를 빌려온들
잃어버린 전설을 찾기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없는 한은
다이달로스의 미로에 갇힌 꼴과 같다네
불로초 찾아 나선 서시(徐市)보다 더한 정성으로
애타게 찾았으나, 그렇게 바라던 이상향은
어디서도 흔적조차 볼 수가 없었다네
꿈 따라 나섰던 흥분마저 그 끝이 초췌해진 몰골일세

친구여! 이제는 못다 한 여행길의 고담함을 끝내고 싶네
그러나 녹록찮은 실망은 오히려 온몸을 누르듯
천근의 무게로 주저앉힌 그곳에서
오로지 명예를 지키라고 성화일세
지친 몸을 쉬고 싶어, 배신의 죄 값이 오명이라도
만사가 힘겨운 나그네는 반야의 품속에 몸 맡겼네
저미는 가슴을 매만지듯 산허리를 감싼 구름의 바다는
자줏빛 노을을 온몸에 녹이고 화려한 빛의 춤을 추었다네
지던 해도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진홍으로 물들인
반야의 하늘위에 찬란한 황금빛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네
하루 내 여정의 끝에서 마지막 힘을 내어 나그네의 머리위에
여광(餘光)을 흩뿌리며 아쉬움의 끝자락을 함께해주었다네

친구여! 거창한 시작으로 출발한 희망의 끝은
알량한 빈손으로 무참하게 깨지고 말았네.
태양에 바래인 역사는 고사하고
월광에 물든 신화조차 종잡을 수가 없었네
우리가 쫓든 아니든 진실은 거기에 있을 텐데
꿈속에서 보았던 전설의 풍란은 찾을 길이 없었네
기진맥진, 괴로움에 못 이겨 지쳐 쓰러진다 해도
한 줄기 희망조차 바닥난 빈털터리가 됐어도
반야의 전설은 진실인 그대로 신화로 말이 없네
무거운 마음안고 돌아서는 발자국 하나마다
글썽이던 눈물이 뚝뚝 떨어져 가득가득 채웠다네
그러나 희망만은 그곳에 고이 두었다네
절규하던 마음과 간절한 소원을 모으고
믿음과 아쉬움과 깊이 팬 상처까지 고이접어 묻었다네

친구여! 이 일은 가뭇없다하여 멈출 수가 없다네
아직도 팔팔뛰고 있는 살아있는 그리움마저
지울 수는 없지 않은가
시쁘다거나 시뜻하다고 허랑하게 다룰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입다의 서원처럼 하늘에 맹서하고
행할 일은 더욱 아닐세
창밖의 은행나무가 메말라 비틀어진 가장이 끝에
덤불인지를 매달고는 비바람에 안간힘을 써야하듯
반향 없는 공연함인 줄 알면서도 희망 다에
조금 얹힌 걱정을 남쪽 향해 공허하게 외쳐야하듯
기미 한창 부푼 꿈을 꾸는 채로
헤어날 수 없는 방황으로 허락되는 것일세
오늘은 아침부터 때 놓친 겨울비가 후두두
자잘한 소리를 내면서 창밖을 적시지만 객쩍은 짓일세
곤고한 처지에는 고깝고 맵게만 들리는 아픈 소리일세

친구여! 그리움이 느꺼워 아쉬움 속에 있으면서
꿈속을 회상하는 만큼이나 쓰라린 것이 없다 해도
나그네는 오늘도 반야가 하도 그리워
하염없는 기다림으로 그쪽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다네
하릴없는 짓이라도, 또 다른 기쁨을 갖고 싶은 희망안고
가물대는 기억을 더듬으며 바라보고 있다네
지금은 비록 정화(淨化)되지 못한 탁한 상태로
앞과 뒤를 분별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고
암혼(暗魂)의 바다에 패대기쳐진 좌절의 아우성과
절망의 나락(奈落)에서 울부짖는 갈망의 몸짓으로
메아리 없이 사라지는 소원(素願)의 소리만 내지른다 해도
초조와 탄식마저 체위로 올려져 조롱당하는 굴욕이라 해도
언젠가 그 옛날의 본질을 되찾으려 할 때에
체념에서 희망을 품으려고 애쓸 때에
해와 달을 다스리는 위대한 신이
무지의 골짜기에서 헤치고 나올 길을 열어 주고
모순에 감싸여 왜곡된 정의를 되돌리려할 때에
편견의 안개로 가려진 지혜의 빛을 되찾으려할 때에
진실을 꿰뚫는 이지의 눈을 뜨게 하시어
광야에 내동댕이쳐진 자기분열의 고통을 이기고
명철(名哲)을 되찾아
허식에 가린 인간실존의 자아(自我)를 스스로 깨닫는 날
그래서 행운의 별 카노푸스가 또다시 반짝일 때에
베들레헴의 별이 다시금 나그네를 이끌어줄 그날이 오기를
손꼽고 있다네

끝없는 기다림으로…



* ⑴ 아르고(Argo)자리 : 3∼4월 남쪽 하늘에 보이는 별자리로 그리스신화에서 황금양피를 찾기 위해 테살리아에서 코르키스까지 항해하는 데 이용했던 이아손(Jason)의 원정선(遠征船) 아르고호에 연유하여 고대에 아르고(Argo)자리로 불렸다.
  거대한 별자리였는데 AD 1752년 프랑스 천문학자 라카유(Nicolas Louis de Lacaille, AD 1713∼1762)가 원래의 아르고자리를 용골자리(Carina, CAR; 아르고호의 용골), 고물자리(Puppis, PUP; 아르고호의 고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아르고호는 큰 바위에 부딪쳐 이물을 잃었는데, 별자리에도 이물 부분은 없다.), 나침반자리(Pyxis, PYX, 아르고호의 동북쪽 작은 부분) 그리고 돛 자리(Vela, VEL; 아르고호의 돛)의 네 별자리로 나누었다.

* ⑵ 카노푸스(Canopus) : 용골자리 알파(α Car)로 부르며 용골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이다. 동아시아 별자리에서는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 또는 노인성(老人星)이라고도 한다. 실시등급(實視等級) -0.72등급으로, 하늘에서는 태양을 제외하면 시리우스에 이어 두 번째로 밝은 별이다. 표면온도는 7000℃, 지구(地球)에서 312광년(光年) 떨어져 있다. 실제로는 태양보다 1500배나 밝다.
  적위(赤緯)가 -51°40'이기 때문에 북위 37°30'인 서울에서는 지평선(地平線)에서 약 1도 정도이며, 거의 지평선에 가까이 떠 있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붉게 보인다. 동양에서는 잘 볼 수가 없기에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로 믿었다. 옛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이 별이 나타나면, 나라에서 경사가 생긴다며 본 사람이 관에 반드시 고해야 했고 포상을 받기도 했다. 또 이 별을 보게 되면 오래 산다는 말도 있다. 약 1만 2000년 뒤에는 남극성(南極星)이 될 가능성이 높은 별이다.

* ⑶ 반야봉(般若峰) : 전북 남원시 산내면과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 접해있는 지리산 제 2봉으로 높이는 1751미터이다. 부드러운 곡선의 봉우리는 어느 방향에서 바라봐도 그 모습이 뚜렷하다. 주봉인 천왕봉 일출(日出)은 3대의 적선(積善)으로 하늘이 감응해야 가능하다고 할 만큼 뛰어나지만, 그와 쌍벽을 이루며 하루해의 짝을 맞춘 반야봉의 낙조(落照) 또한 뒤지지 않는다. 산허리를 감싸고 꿈틀대는 구름과 하루 여정을 끝낸 태양이 연출하는 빛의 향연은 신비한 경지라 이를 만큼 뛰어나다. 참고로 지리 십경(智異 十景)은 제 1경인 노고운해(老姑雲海)부터 순서대로 직전단풍(稷田丹楓), 반야낙조(般若落照), 세석철쭉(細石擲燭), 불일현폭(彿日懸瀑), 벽소명월(碧宵明月), 연하선경(烟霞仙境), 천왕일출(天王日出), 섬진청류(贍津淸流)이고, 마지막 제 10경은 칠선계곡(七仙溪谷)이다.

* ⑷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구전(口傳)에 풍란과 관련된 귀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지리산의 산신은 성모신(聖母神)인 마야고(摩耶姑)로 마야고는 사모하는 반야(般若)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반야를 기다리면서 시간이 나는 대로 나무껍질에서 실을 뽑아 베를 짰다. 그리고 그 베로 옷을 만들어 그녀가 나타나면 선물하기 위해 천왕봉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구름에 휩싸여 나타난 반야가 그냥 마야고 앞을 스쳐 쇠별꽃 밭으로 가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야고는 다가가려 쫓아갔으나 끝내 닿지 못하였다. 화가 난 마야고는 만들어 둔 옷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그 옷가지들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나뭇가지에 걸려 나부끼고 있었다. 그래도 마야고는 화가 풀리지 않았다. 반야를 현혹시킨 쇠별꽃을 지리산에서 피지 못하게 하고, 천왕봉 꼭대기에서 성모신이 되었다. 그 후에 마야고가 찢어서 버린 옷의 실오라기는 귀한 생명으로 되살아나 풍란(風蘭)이 되어 지리산에 서식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 ⑸ 풍란은 오래전부터 길러졌으며 인간과는 친숙한 식물이다. 풍란(風蘭)이란 이름은 바람이 솔솔 잘 통하고 공중습도가 비교적 높은 곳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 외에도 그윽한 향기가 매혹적으로 풍기는 난초(蘭草)라는 뜻에서 유래된 '계란(桂蘭)', 세속을 초월하여 높은 바위 위나 나무의 깨끗한 곳에서 고고하게 살아간다고 해서 '선초(仙草)', 강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간다고 하여 '불사초(不死草)', 그 외에도 '건란(乾蘭), 헌란(軒蘭)'등 다수의 이름으로 불린다. 풍란은 무한엽서(無限葉序)의 식물이다. 일 년에 두서너 잎까지 새로운 잎이 나오고 그보다 적은 수의 아래쪽 잎은 낙엽이 진다. 새 뿌리는 대체적으로 중간 아래쪽에서 나온다. 더욱이 대나무처럼 한 번의 생육기간이 끝나면 그 부분의 성장은 끝난다. 매년 그렇게 반복하며 대체적으로 한해에 한두 잎이 더 많아질 뿐이다. 그러니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 풍성해졌을 뿐이지 변함없이 그대로처럼 보인다. 특히 풍란의 변이종인 부귀난(한국풍란)은 천생의 모습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변용변상(變容變相)하여 기다림의 미학(美學)이란 글귀가 가장 잘 어울리는 식물이라 할 수 있다.
  부귀난(한국풍란)은 풍란 중에서 돌연변이가 된 변이종(變異種)으로 부귀난(富貴蘭) - 부귀난이란 일본이 발전시키고 체계화시킨 풍란의 변이종을 말한다. 일부 원예가에 의해 재배해오다, 에도시대(江戶)에 부자나 귀족 등 실력자들에 의해 풍란의 변이종이 수집되어 크게 각광을 받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름이 부귀난인 이유이기도 하다. 메이지(明治)시대부터 부귀난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히 체계를 갖추었다. 그러나 변이품종이라 하더라도 원예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일본 부귀난회에 등록함으로써 비로소 부귀난이라고 부르게 된다. 근년에 들어와 한국에서도 똑같이 체계를 갖추고 한국에서 개발하거나 발전시킨 변이종에 대해 한국풍란이라 이름을 짓기 시작하였다. 부귀난(한국풍란)은 잎과 꽃의 모양과 무늬의 형태와 색상, 붙음매의 형태와 축(줄기)과 뿌리의 색깔 등 다양한 예(藝)를 감상의 대상으로 하며 특히 뿌리(根)의 예를 감상할 수 있는 식물로는 지구상에서 유일하다. 특별한 것은 꽃이 피면서 풍기는 청순한 아름다움과 감향(甘香)으로 이는 백미라 할 수 있다. '그 꽃이 청초하고 가향(佳香)에 넘칠 뿐 아니라 기품과 아취가 비할 곳이 없는 것/「김진섭, 인생예찬」'이라는 말이 들어맞는 난이다.

* ⑹ 「출애굽기 4:2」,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신은 율법으로 한 민족을 당신 모습처럼 귀하고 거룩하게 만들고(레 11:45), 선택받은 민족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다. 겉보기에 초라한 지팡이에 불과했지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좌절과 낙담에 익숙한 삶을 살던 모세를 비롯한 유대백성에게 신의 권능이 임할 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깨우쳐 준 것이다.

* ⑺ 《그리스 신화》/ 테세우스 신화

* ⑻ 경남 남해군 금산에 '서시가 일어나 일출에 예를 올렸다(徐市起 禮日出)'는 글귀가 새겨진 마애석각(磨崖石刻)이 있다. 이는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구하려고 나섰던 서시(徐市,徐佛,徐福)가 삼신산인 봉래산(금강산), 영주산(한라산), 방장산(지리산)을 거쳐 다도해를 돌다가 남해군 금산(錦山, 710m)에 당도하여, 뛰어난 절경에 감복하여 지극한 예를 올렸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아마도 절경에 감탄한 만큼이나 불로초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 ⑼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소설 산하(山河)에서 작가 이병주(李炳注, 1921-1992)가 한 말이다.

* ⑽ 「사사기 11:30-31」,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Jephthah)가 서원(誓願)하는 말이다. 그는 암몬 족속과 전쟁하기에 앞서 여호와께 이와 같은 서원을 올렸다. 여호와께서 이번 전쟁에 승리케 해주시면 집에 돌아가서 가장 먼저 영접 나온 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는 것이다. 여기 이른 자 '번제'는 반드시 불에 태워서 바치는 제물만을 의미하지 않고, 여기서는 그저 바쳐 올리는 제물(ascending offering)을 의미한 것이다. 사람을 태워 바치는 제물로 사용하는 것은 율법에 엄금되었다.(레 18:21,20:2-5; 신 12:31,18:10) 입다는 이 율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암몬 족속이 몰록 우상(혹은 '밀곰', 왕상 11:5,33)을 섬겼는데(왕상 11:7), 저희 자녀를 불살라 그 우상에게 바치는 악한 미신(迷信)에 젖어 있었다. 그 때에 입다가 암몬을 대적하면서 저런 미신도 미워하였을 것은 물론이다./《호크마 주석》

* 우리말 해설
 ㆍ살갑다 : 마음씨가 부드럽고 다정스럽다.
 ㆍ곰살궂다 : 성질이 (속으로)부드럽고 다정스럽다.
 ㆍ재우치다 : 빨리 하도록 재촉하다.
 ㆍ야지랑스럽다 : 얄밉도록 능청맞고 천연스럽다.
 ㆍ보드기 : 크게 자라지 못한 나무.
 ㆍ가뭇없다 : 찾을 길이 없다.
 ㆍ시뜻하다 : 어떤 일에 물려서 싫증이 나다.
 ㆍ시쁘다 : 마음이 흡족하지 아니하다.
 ㆍ느껍다 : 어떤 느낌이 생긴다.



댓글목록

김정구님의 댓글

김정구
잘 읽었슴니다만. . . .

해설이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