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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단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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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가치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에 보조를 맞추느라 애쓰는 우리에게, 이것은 쉴 사이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분주하게 움직일 뿐인 여유 없는 삶을 사는 기계화(機械化)된 지금의 나를 말함이며,
  같은 크기, 같은 모양, 같은 색깔을 같은 방법으로 찍어대는 인쇄기처럼, 오로지 같은 무엇과 같이할 뿐이요, 번뜩이는 상상력이나 요령도 없으며, 틀에 박힌 딱딱한 삶에도 만족해하는 도식화(圖式化)된 현재의 나를 이름 하는 것이고,
  좋은 평판과 사회적 지위에 따른 부러움을 받는 것에 무한한 애착을 가지며, 손에 쥔 것을 놓칠까 두렵고, 변화가 주는 새로운 질서에 겁이나, 오늘에 안주하는 정형화(定型化)된 모습으로 오늘을 어제처럼 사는 나를 가리키는 것으로,
  하늘은 우리를 선택하여 현명함과 부유함까지 주었으나, 주위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자신의 앞만 보고 달렸을 뿐, 현명함은 오로지 개인의 명예를 높이는 받침으로 쓰였고, 부유함에 얽매인 인색은 나눔을 버렸으니, 하늘의 노여움을 받을까 그것의 두려움에 떠는 우리를 말하는 것으로, 그 두려움이란 욕망과 충동의 버팀목인 이성을 함몰시키고, 영혼마저 불신케 한 공포로서, 삶은 그런 우리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잠시 짐을 내려놓고, 가는 길을 묻는다면, 당신은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가요?"

  마음이 세상을 향해 있을 때가 있고, 반대로 내 안으로 숨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에 것은 몸과 마음이 일치하는 열린 마음이고, 뒤에 것은 몸인 아(我)와 마음인 오(吾)가 따로따로 제각기가 되는 닫힌 마음입니다. 나를 가리키는 말에는 아(我)와 오(吾)가 있습니다. 아(我)는 소아(小我)를 뜻하며, 육신의 자신을 말함이니 육체아(肉體我)이고, 오(吾)는 대아(大我)를 말하며, 정신의 나를 이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섰을 때는 몸과 마음이 일치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입맛에 맞춰서 살다보니 모르는 사이에 열렸던 마음이 닫쳤습니다. 나를 밝히는 것은 해(害)를 자초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공유와 나눔의 가치를 오해하며, 가진 것에 대한 두려움까지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닫게 되면 개체의 가치에 집착하여 아집(我執)의 굴레에 갇히게 됩니다. 세상을 향해서는 몸인 아(我)를 앞세워 웃을 수 있지만, 마음인 오(吾)는 뒤에서 무시하거나 증오까지 하게 됩니다. 반면에, 열린 마음을 가지면, 나의 행동이 양심에 따라 성실(誠實)을 다하는 것이므로, 몸과 마음이 한데 어울린 진정함으로 가식이 없게 되고, 잔잔한 호수 같은 평온함을 얻게 됩니다.

  올해의, 정확하게 말하면 정해년, 사자성어는 자기기인(自欺欺人)입니다. '자기를 속이고 남도 속인다.'는 말이니, 이는 자기도 믿지 않는 것으로 남까지 속인다는 말입니다. 개탄스럽기도 하지만, 무서운 세태를 예리하게 표현한 말로 간담이 서늘합니다. 얼굴을 찡그리며 후회한들 이익 없는 수고일 뿐으로, 이것이 모두 마음을 닫고 사는 우리가 만든 것이니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마음의 문에 빗장을 지르는 것은 자신에 대한 기만이며, 이의 심화는 존재마저 부정하는 근원의 상실일 수도 있음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사람의 길은 마음속에서 먼저 열린 뒤에 밖으로 열립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갖는 것과 아는 것의 굴레에서 벗어나, 경계를 없애고 조화를 만들어 전체이며 하나가 되려는 것으로서, 자기합리화에 갇힌 내적 존재의 부정이나 수정을 요하는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정리하는 것이며, 독립된 개체로서의 고유성과 공동체의 일원으로 가질 수 있는 공존(共存)의 가치와의 상호이해에 따른 충돌을 해소하는 것이고, 잠재적 카테고리 안으로 은밀하게 받아들인 동류의식과의 상충(相衝)에 따른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집착을 버리고 깨달음을 얻음으로서 두려움과 노여움을 떨쳐버리려는, 변화를 이겨내는 행위로서, 이는 불확실성으로 인식하고 있는 외부요인을 떨쳐낼 수 있는 용기와 확신과 의지가 굳건하게 뒤를 받쳐야 하며, 그때서야 비로써 닫혔던 문이 열린다고 하겠습니다.

  향초를 불에 태우면 그 향기가 아름답고, 누린내 나는 풀을 태우면 그 냄새가 고약하다.(火之焚於薰者, 其香美. 焚於蕕者, 其臭惡.)고 했습니다. 향기(香氣)가 넘실대는 삶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왕이면 누린 풀냄새보다는 향초 냄새나는 삶을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고, 누구나 그런 삶을 얻으려고 무던히 애를 씁니다. 그러나 손도 닫지 않는 먼 곳만을 휘저을 뿐으로,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눈앞에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 길은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며, 다만 우리 스스로가 찾아야하는 수고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코고는 잠자리라도, 남과 같이 등 돌리는 몰이해(沒理解)는 누린 풀을 태우는 닫힌 삶이나 다를 바가 없지만, 약간의 고초가 따르더라도, 물론 그것을 좋아라하는 사람은 없으며, 어떤 이는 불행하다고까지 말할 정도이지만, 거짓을 감싸고 있는 위선의 옷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미움과 질시의 벽을 허물고 자신의 진실성을 담보로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주며, 다행스럽게도 마음 또한 나눔을 만드는 것이니, 다정한 부부같이 그래도 마주보며 잘 수 있는 배려와 아량과 이해의 향초를 태운다면, 그 삶이야말로 사랑의 향기가 넘쳐나는 아름답고 보람된 열린 삶일 것입니다.

  보이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은, 익은 과일이 자연을 찬양하고 지금까지 키워준 나무에 감사해 하면서 떨어지는 것처럼 만족할 줄 아는 즐거움을 깨닫는 것이며, 과거를 온전히 용서하고, 현재를 온전히 이해하고, 미래를 온전히 기대하는 믿음도 함께 갖는 것으로, 비록 좁고 협소한 문을 지나는 것처럼 힘들지만,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바라던 향기 나는 삶의 길로 자연스럽게 발길을 들여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에 대해 진정한 의미를 잊을 때가 있습니다. 그 길은 반드시 최고가 되는 것,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 부자가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고의로 깊은 사유(思惟)를 기피하거나 방관적인 태도를 견지(見地)하거나 심하면 궁(窮)한 변명까지 늘어놓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표면을 바꾸거나 얼굴을 가릴 수는 있겠지만, 보이지 않는 내적인 유형까지 덮을 수는 없습니다. 회피는 잠깐의 위안이 될지는 몰라도 과정의 일부가 될 수는 없으며, 본질은 언제나 그대로 남습니다. 결국은 한시적인 시간의 문제일 뿐으로 끝에는 원점으로 되돌아오게 되며, 표면화될 때에는 더 큰 혼란을 초래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바라고, 진정으로 꿈꾸는 참다운 삶을 얻으려면 열린 마음을 찾아야합니다. 열린 마음만이 다른 이들을 향해 강한 공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며, 이는 공존이란 상승가치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나눠주며, 모두가 어울리도록 만들기 때문이고, 그것이야말로 잃어버린 본성을 찾는 것으로, 하늘이 준 온전함을 회복하는 바른 길이며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삶이란 명예와 지위를 얻어 부귀와 권세를 누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간절한 바람은 타고난 삶을 기뻐하며 인간다운 나날을 누리는 데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는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해, 높은 뜻을 실천하고, 뜻대로 얻는 것이야말로 원하는 삶이며, 빛나는 삶이며, 진실로 귀한 열매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삶의 가치일 것입니다.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나무처럼 크는 일이 아니다.
  3백년의 수령(樹齡)을 자랑하는 커다란 떡갈나무도,
  하늘 높이 치솟아 있으면서도 마침내 베어져,
  가지도 없고, 이파리도 없는 목재가 된다.
  5월의 백합꽃은 단 하루를 살았다가,
  설사 그날 밤에 쓰러져 썩어 질지라도,
  훨씬 더 아름다운―,
  그것은 빛의 화초이다.

* 지난해를 되돌아보며 오늘 일을 말할 수 있는 행운에 감사드립니다. 네 소원대로, 네 도모대로 이루어지기를 허락하심을 귀히 여기며, 모든 이에게 하나 가득이 축복이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다음해를 맞이할 때쯤이면 모든 소망하는 것이 뜻대로 될 것을 확신합니다. 무자 원단에 서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댓글목록

김원태님의 댓글

김원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트래지디님의 댓글

트래지디
"한 송이 꽃이 피어 그 향기가 바람에 실려갈 때 꽃은 바람에게 감사를 느꼈다..."

스물 몇 살 때 라즈니쉬의 책에서 읽은 구절입니다.
스스로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서 타인에 향기로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존재였으면 하는 마음을 20년이 넘게 품어 보았지지만, ㅎㅎ
제 속에 또아리를 틀고있는 속물적 근성을 떨어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자신이 가꿔 온 삶의 모습에서 타인에게 전해지는 것이 냄새냐, 향기냐... 스스로는 냄새밖에 못 느끼겠더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