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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금과 객소리(客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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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금과 객소리(客說)

- 시행착오는 주머니가 얇아진다-


  우리 집 난대의 제일 높고 좋은 자리에는 무지(無地)로만 촉수가 10촉이나 되는 별명이 무지막지한(無知莫知汗)인 금광금이 제왕처럼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슨 사연이 있기에 무지 금광금을 최고의 명당에 모셔 놓았냐고 의아해 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난(蘭)도 처음부터 무지가 아니었다. 구입했던 당시에는 그런대로 장래가 촉망되는 희망덩어리였다. 그러니까 햇병아리 티가 물씬 풍기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하니 지금으로부터 5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야한다. 그 시절에는 풍난을 무조건 좋아만했던 시기였던 것 같아 돌이켜보면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입문(入門)한지가 그리 길지 않았던 시기라 풍난을 대할 때마다 부족한 눈(目)을 한껏 불평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다른 말씀으로 하면 심미안(審美眼)이나 감식안(鑑識眼)이라고 할까? 난을 보는 능력이 미약하고 부족하다고 느끼곤 하였던 시절로 마음만 급했었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나인 것을. 그래도 난을 고를 때는 평생을 어울리며 살아야하는 동반자의 격(格)이라 생각하여 나름대로 신중을 기해 고르고 골랐다. 물론 망설이기도 몇 번씩 하다가 이만하면 괜찮겠다고 판단이 되면 난을 구입하였고 금광금도 그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 입수하게 되었다. 비록 상예(上藝)의 난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법 무늬가 들어 있는 1촉짜리로 좋은 종자목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물론 혼자만의 판단이었다.
  초보시절에 풍란을 구입하면서 어려움을 겪은 경험은 누구나 한두 번씩은 가지고 있는 추억이다. 현재는 높은 수준의 반열에 올라 우리의 앞길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는 고수들도 초보시절에는 누구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대단히 좋은 풍란을 구하기란 일반적인 애배가(愛培家)에게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망설이고 또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초보가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니 기껏해야 들은풍월로 판단하여 첫눈에 보아 직감으로 좋다고 느끼면 좋은 것일 수밖에 없다. 본인은 지금도 풍란에 대한 지식이 모자라도 한참은 모자랄 뿐만 아니라 경험도 일천하여 뭐라 대놓고 말할 처지는 못 된다. 그러니 좋은 난을 고르는 특별한 방법을 알 수는 없고 오로지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드는 풍란이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차선의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차차 안목을 키워나가야 한다.
  안목이 부족하다는 불안감에 자신의 감각적 시각까지도 부정하는 것은 더 나쁜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보는 눈이 낮더라도 누구에게나 감각적인 눈은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자신의 감성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힘을 키워나가야지 명품만을 쫒는다든지 미흡한 경험으로 변이종 등을 찾는 것은 잘못 된 생각이다. 경험이 쌓여가면서 심미안(審美眼)과 감식안(鑑識眼)을 키워나가야 보다 좋은 난을 발견하거나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취미생활을 말 그대로 생활 속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을 하여야 함은 여느 세상일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부언할 것은 ‘돈이 없지 난은 얼마든지 있다.’는 어느 고수 분의 말씀처럼 초보시절에는 풍란 구입시기가 늦으면 늦을수록 시행착오가 적음은 물론이고 들이는 돈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필자만의 경험인지는 모르겠으나 입문시절에 풍란을 구입할 때는 가치관의 혼란을 많이 겪는다. 든 머리가 게 게꽁지만하니 좋은 난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연하게 구분할 능력도 없을뿐더러 호감이 간다고 무조건 구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막상 구입하려고 결정을 해도 망설여지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는 차일피일 미루며 이런저런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곤 한다. 왜냐하면 그 일이 스스로에게 정당한 가치로 납득이 되어야하는 것이 첫째이고, 마니아가 된다는 것과 미쳤다는 뜻은 다르다는 것이 그 두 번째이다. 그리고 취미생활을 하는 기본적인 자세도 문제로 손꼽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취미생활을 잘 하는 것은 풍성한 결실이 있는 인생을 만들기 위해 중요한 도구를 알맞게 사용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좋은 목적이라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으니 지나친 것은 아니함만 못 한 것은 취미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취미생활로 인하여 생업에 지장을 주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원인이 되지 않도록 항시 경계와 절제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취미생활을 일정한 범위로 한정 시킬 수가 있는 지혜로움과 자제력이야말로 취미생활을 보다 알차게 계속해서 즐길 수 있는 바른길이다. 건전하고 실속이 있는 취미생활이 인생을 보다 윤택하게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취미생활이라는 원래의 취지와도 부합되는 것이다.
  얼마 후에 금광금이 큰 희망을 안고 도착하였다. 장미 빛 꿈에 설레는 가슴을 달래며 정성으로 길렀다. 초짜일 때의 심정을 말한다면 누구나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난(蘭)이 자라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져 애간장을 녹이는 것이다.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 것인지 또는 원래의 조상에게 되돌아가려고 세월을 거꾸로 세는지는 가늠할 수가 없었지만 심사가 단단히 뒤틀린 것만은 확실하였다. 신엽(新葉)이 처음 한번은 무늬를 제대로 물고 나왔으나 그 다음에는 조금, 또 다음 차례에는 반, 이런 식으로 무늬가 점점 얇아지며 결국은 없어지더니 언제부터인지 나오는 신엽마다 무지로 변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무슨 무지동맹(無地同盟)이라도 맺었는지 나오는 신엽은 물론이고 자촉까지도 몽땅 무지로 나오는 것도 모자라 자촉에 자촉까지도 나오는 족족마다 무지로 나와서는 무지의 향연을 벌리니 속이 뒤집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사람이 좋아서 참았다. 그 후에도 있는 이해심을 다 동원해서 기다리고 기다렸다.
  처음에는 좋은 자촉을 받으려고 무지 촉을 떼어낼까도 했으나 생명존중을 직접 몸으로 실천하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있었던바, 그것도 살아있는 생명이고 설마 또 나오랴 하는 천사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다 지금의 모양처럼 무지막지한 무지 동산을 만들게 되었다. 그러니 속도 상할 만큼 상했고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어 대책을 세우기로 하였다. 더 이상 보기에도 민망하니 유배를 보내기로 하고 얼마 전까지 구석진 곳으로 멀리(?) 보냈다. 하지만 아쉬움과 미련은 남아 언젠가 철이 들면 좋은 자촉을 내겠지 하는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철이 들라는 금광금은 철이 안 들고 필자가 먼저 깨달았다. 그래 기다려 보자 어차피 기다리는 것이 풍란 기르기가 아니겠나.
  물론 이 경우에도 이번엔 안 되었으니 다음에는 틀림없겠지 하는 확신이 있는 기다림이 실망보다 크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어느 누가 힘주어 말한 것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고 기다리자고 속으로 다짐 아닌 다짐을 했던 것이다. 기다려라 기다림만이 능사다 이렇게 말 하고 싶은 것이 또한 풍란 기르기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풍란을 기르는 데는 기다림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기다림은 풍란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기다림(忍耐)이란 세상을 사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인생의 지침임은 다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나쁨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슬픈 일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울 때에는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고, 서두르거나 조바심 낼 필요 없이 차근차근히 참고 기다리며 능력을 다지는 자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생살이에 부족한 능력을 키우고 수양을 쌓는 일은 오로지 기다리는 것으로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의 이치 또한 풍란을 기르면서 배우게 되는 이점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금년 봄부터는 제일 좋은 자리를 마련하여 그곳에다 무지 금광금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희망을 보태서 기다렸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올해는 꽃대도 서너 개씩 올리고 나름대로 열심히 자라고 있다. 어차피 인생살이나 풍란 기르기나 매일반이 아니겠나. 희노애락(喜怒哀樂)이나 곡소비환(哭笑悲歡)이 인간의 삶이라는데 어차피 도는 인생이니 순차적으로 돌다보면 웃을 일이 반드시 생기는 것은 하늘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마음을 비우다보니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친근함이라는 정(情)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가까움이라 일컫는 친근함의 진정한 의미의 본질을 깨달게 되었다. 가까움이란 요즘 같이 각박하고 인정머리 없는 현실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순하게 하는 큰일을 한다. 가까운 마음이란 떨어져 있어도 항상 옆에 있듯이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편견이 없도록 마음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막아준다. 악을 써서 이기는 무리한 세상이 아니라 상식과 경우가 통하는 바른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가까움이 아닐까한다. 풍란 기르기는 이처럼 많은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물론 느끼고 못 느끼고는 당사자에 달린 문제이지만.

  그런데 말씀입니다. 죄송한 말씀인데요.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얘기가 황(黃)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모 난원에서 그 질긴 운명의 장난인 금광금과 같은 종류의 상급의 금광금을 판매대에 올렸습니다. 너무 마음에 들어 한 순간에 정말 한 순간입니다. 나도 모르게 꼭하고 찍어버렸습니다. 물론 내가 찍은 것이 아니고 한(恨)이 찍었지만요. 아∼. 일편단심 민들레가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그렇다 ‘개 꼬리 삼 년 묻어 황모(黃毛) 되는가!’ 굳은 결심을 하고 새로 들여온 금광금을 난대에 올려놓았습니다. 물론 큰놈 눈치를 보면서 한쪽 구석에다 소리 안내게 살며시 가져다 논 것은 말하면 잔소리겠죠.
  굳이 연기성(緣起性)을 말하지 않더라도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는 말씀은 이럴 때 맞는 말이 아니겠느냐고 스스로 변명이 안 되는 변명을 해봅니다. 인지상정 아닙니꺼! 내 맘대로 안돼요.

* 좌측은 이번에 들인 신아 2촉 포함 3촉인 금광금, 우측은 10촉으로 커진 무지막지한(汗)의 구입당시의 모습. 그동안 잘 자라줘 액아 포함 14촉이었으나 이번에 자세를 잡기위해 4촉을 떼어내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


댓글목록

이계주님의 댓글

이계주
역시 취미의 즐거움은 풍란을 들이는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따라서 개인 사정에 따른 어느정도의 지출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져야 되리라 봅니다.
즉, 이제 입문하신 분들이면 그 시기에 합당하는 구입비용...
그러면서 취미생활이 해가 거듭되면서 눈높이의 상승에 따른 구입비용...

그런데 간혹 느낀게 어느정도 취미생활 하신분들이 이제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을 보며
난의 구입단계를 자기의 눈높이에 맞춰서 훈수나 안내를 하시는 경우가 있더군요.

이는 결과적으로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이 입문단계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줄이게 되며
아울러 풍란시장에 있어 입문품종의 위기를 초래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리라 봅니다.

풍란에 대해서 많이 보고, 많이 키워보는것 보다 더 큰 눈높이 교육은 없다고 봅니다.

이제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을 안내하시거나 훈수를 두실 때는 본인의 안목이나 눈높이 보다는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 지도를 해 주시는 것이 바람직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일풍님의 댓글

일풍
마음에 와 닿는 이야깁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느끼던 감정을 허심탄회하게 그려놓아 내 얘기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기다린다는 것은 아직까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초보인 제자신도 기다림과 인내 사랑을 배우는 중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DO OL님의 댓글

DO OL
<계주님 발 걸기.>

말씀의 논리인즉 장강의 흐름과 같이 유유자적하고 도도합니다, 그랴.
근데, 그 논리는 도꾸가와 시대로부터 1980년대까지의 취미 개론 아닐까요?

그 세월중에는 기껏해야 매월향, 춘향이, 황진이, 계월향, 애랑 정도 밖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요즘 텔레비좀 보세요.

우리나라 아그들은 셀 수도 없고, 류바, 엘레나, 싸샤등 수도 없이 많은
섭렵 대상들이 쏟아지는데 운제 입문 거치고, 운제 중급 거치고, 운제 고수 까지 갑니까?

할 수만  있으면 시작부터 흑룡, 비,(더좋은 것), 침묵(?) 이런 것들로 시작해야지요.
비싸다고요?
만원이 큰 돈인 사람도 있고 1억이 푼돈인 사람도 많다니까요. 시상에는.

취미의 한계 혹은 제약 변수는 입문이든 고수든 오직 주머니의 크기와
두께에만 의존한다고 지는 강력히 주장합니다.
그리 생각하든 안하든 관계 없이.

근데 무신 훈수???

*똘에게 돌 던지지 마세요.

동초님의 댓글

동초
좋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적은 가격의 풍란을 구입하면서도 몇 날을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가득했었던 그 기다림이란 형언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당연히 어디에서나 함부로 맛볼 수 없는 것이며 그 깊이가 남다른 특별한 경험입니다.
풍난을 어느 정도 하신 분들은 그런 경험을 한두 번씩은 가지고 있는 좋은 추억일 것입니다.
현재는 높은 수준의 반열에 올라 우리의 앞길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는 고수분도
초보시절에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수업료 안내고 공부하려면 특정한 방면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대단한 수재(秀才)소리를 들어야
장학금을 받거나 면제가 가능할 뿐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현실인데,
과연 고수 중에서 그런 과정을 거치신 분들이 몇 분이나마 계시려는지?
모두 넉넉하지 않는 살림에 그만큼의 수업료를 지불하고,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던 시절을 보낸 후에 그 정도의 위치까지 왔다고 해야 옳을 곳이며
그래서 더욱 권위가 배어 있으며 한층 더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닐까 사료됩니다.

부언할 것은 배움터가 명품들만 취급하는 귀족풍의 고급스런 곳이냐,
그렇지 않으면 허접스럽기 짝이 없어 입문품 취급도 못 받는 하급(?)의 풍란들만 상대하며 배운 곳이냐는 논외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내 난대에 올려져 있는 살아 있는 나의 난이어야지,
수억을 호가하더라도 그림의 떡은 필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