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蘭, 그 기다림의 美學 ... 능곡 이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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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와 닿는 글이었는데 풍.삶 회원님께서 올려 놓으셨길래...
좋은 글이라 더위도 식힐겸 한번쯤 보시라고 올려 봅니다.
 
아래 글은 능곡 이성보 선생의 <蘭, 그 기다림의 美學> 에 있는 글이다.

현대 산업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물질의 풍요로움은 마음껏 누리고 있으나
인간 본래의 심성은 알게 모르게 상실하고 있다.
따뜻한 인간미 보다는 냉철한 이성으로 생활 전선에 나서지 않으면 남보다 자꾸만 뒤쳐지게 되어
생존 자체가 위협받게 되는 현실이라서 정신적인 여유를 갖기 어렵게 되었다.

정신적인 여유를 갖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각자 취향에 맞는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일 것이다.
다른 취미 활동에도 나름대로의 여유나 멋이 있겠으나
현대인에게 꼭 요구되는 적당량의 운동과 회색의 콘크리트 벽에 순치되어 자연의 빛깔을 잃어가는
심성에 늘 푸르름으로 상징되면서 생명에 대한 외경을 일깨워 주는
난을 가까이 하는 취미생활이야말로 가장 멋있고 운치있는 취미 활동이라 말할 수 있다.

난을 재배하려면 난을 비롯한 최소한의 물질적인 여유와 시간 등, 요구되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은 난을 기를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난을 하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마음의 자세에 대하여 살펴 보기로 하자.


첫째, 난을 하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를 지녀야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고 사는 일도 벅찬데 난을 키우는 하찮은 일에 시간을 뺏길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애시당초 난을 가까이 안하는 것이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난을 사랑하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이롭다.
난계의 불협화음은 이런 사람들이 어쩌다 난을 시작하게 되어 빚어진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갖고 싶은 난이었기에 때로는 무리를 해서라도 입수하게 된다. 난을 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경험하였을 것이다.
일단 입수하였다면 여기에 소요된 귀한 시간과 소중한 물질은 이내 잊어버려야 한다.
잊지 않으면 결코 애란인이 될 수 없다.
애란은 말로서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에
난을 위하여 투자한 모든 것은 이내 잊어버리고
대신 마음의 여유를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 진정한 애란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난을 하는 사람은 마음이 자유로워야 한다.

난잎은 길고 짧고 무질서하게 뻗어 있는 것 같으나
유연한 곡선은 정연하면서도 결코 획일적이지 않으며 맺힌데 없이 자유롭다.
난을 하는 사람의 마음도 이러해야 하리라. 흐트러짐이 있어서도 안되겠지만 얽매임이 있어서도 안된다.
얽매임을 당한 속박된 마음이 어떻게 난을 아름답게 볼 수 있으리오.
난을 기르는 사람들 가운데는 천성 탓인지 아니면 자잘한 구석에까지 세심한 주의를 요하는
난의 속성 때문인지 소심한 성격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래서 인지 지극히 사소한 문제로 다시는 보지 않을 듯이 등을 돌리거나
자기 주장에 집착한 나머지 서로 비방하는 볼썽사나운 일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진정한 사랑은 예속당하거나 소유하는 것도 아니며 느끼며 믿는 것이고 베푸는 것이되
집착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랑에 집착하면 고통스러운 것이 되듯이 난에 있어서도 사랑하되 지나치게 집착하면
오히려 난의 노예가 되어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랴.
난으로 부터 마음이 자유로워지면 사람과의 교류도 원만해지어
산골짜기에서 홀로 유향(幽香)을 품는 난과도 같이 인격이 고매해 질 것이다.


셋째, 난을 하는 사람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은근과 끈기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성이 언제부터 인지 모르나 조급해졌다.
차분히 생각을 다듬을 줄 모르고 허둥지둥 서둘고 안달이다.
이러한 일들은 사회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난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고가의 난을 빨리 촉수를 불리고 싶어하고
얼른 키우려들어 오히려 난을 망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후닥닥 난을 모아 채 1년도 안된 사람이 수천 분의 난을 모았다고 자랑하는가 하면
고가의 명품 몇 분을 사모았다고 대가연하는 사람도 있다.
남방계 식물인 심비디움속의 난들은 성장이 더딜 뿐만 아니라, 촉수도 잘 불어나지 않는다.
백벌브에서 틔운 촉에서 꽃을 피우자면 몇 년이란 세월이 걸려야하고
자생지에선 생강근에서 새 촉이 돋는데 십수 년이 소요된다.
이렇듯 난을 기르는 것은 오랜 세월을 요구하고 있다.
속담에 '조갈스런 귀신이 물밥처신 못한다'는 말이 있다.
기다리지 아니하고는 난을 기르는 기쁨을 맛볼 수가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넷째, 난을 하는 사람은 마음이 맑아야 한다.

난은 정(淨)한 곳에 뿌리를 내리기에 깨끗한 돌을 식재로 사용한다.
깨끗하지 못한 식재는 이내 뿌리를 썩게 한다.
그래서 난의 뿌리가 자라는 화분속은 난을 기르는 사람의 마음속과 같다고 하던가.
마음이 맑은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다.
정직한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은 마치 난에게 맑고 깨끗한 물만을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조그만 맑은 샘이 많은 사람의 갈증을 풀어주듯 맑은 마음을 지닌 한 사람의 애란인이 우리를 기쁘게 하리라.
사회 어느 분야에서건 마찬가지겠지만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난계에 끼치는 해독은 설명이 불요하다.
정직한 사람은 자신을 엄히 다스리기에 조신(操身)으로 주변이 깨끗하다.
한 포기의 난이라도 깨끗한 마음으로 길러야 사람이 가야 할 바른길이
자연의 이치속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고 옛 사람들은 일렀다.
정성을 다하여 난을 가꾸듯 맑게 갠 하늘처럼 밝은 마음으로 인생을 보람있게 가꾸어 보자
난이 있음에 즐거운 인생,
거듭나지 않는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댓글목록

이계주님의 댓글

이계주
저는 난을 할 자격이 못되는가 봅니다. ㅎㅎ

김정구님의 댓글

댓글의 댓글 김정구
이유를 말해야지요!

흑산 김근문님의 댓글

흑산 김근문
좋은 말씀이지요.
볼때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군요

가림님의 댓글

가림
부끄러워집니다 ㅡ.ㅡ

피고지고님의 댓글

피고지고
첫째와 넷째는 꼭 지키고 싶습니다.

대정승2님의 댓글

대정승2
좋은 글입니다.

김원태님의 댓글

김원태
좋은 말씀입니다.